KBS ‘이상한 수신료 소송’ 내부 시각은

  • 입력 2005년 9월 8일 03시 03분


한국방송공사(KBS)가 국세청과의 세금 소송 1심에서 2000억 원에 가까운 돈을 환불받을 수 있도록 승소하고도 재판부에 506억 원만 받고 소송을 취하하겠다고 조정 의견을 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KBS 내부에서는 이에 대해 “발등의 불로 떨어진 적자를 메우기 위한 고육책이었을 것”이라고 해석한다. 소송을 계속하면 대법원 판결이 나기까지 최소 4, 5년이 걸리는데 조정을 하게 되면 당장 현찰을 손에 쥘 수 있다는 것.

KBS가 올해 이사회에 보고한 연말까지의 예상 적자 규모는 약 780억 원. 지난해 638억 원 적자에 이어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는 셈이다.

780억 원 중에는 국세청이 1999년분 법인세 등으로 추징한 366억 원이 포함돼 있다. 아직 납부하진 않았지만 회계 장부상으로는 올 1분기(1∼3월)에 이미 손실로 처리된 금액이다. 이 돈은 KBS가 조정금액으로 신청한 506억 원과 똑같은 방식으로 추징당한 것이기 때문에 조정이 성립되면 내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KBS가 소송을 취하하는 조건으로 낸 조정안대로 합의가 이뤄진다면 KBS가 얻는 장부상의 이익은 872억 원에 이른다. 적자를 면하고도 100억 원가량의 흑자를 낼 수 있는 금액이다.

그러나 KBS 일각에선 조정을 통해서라도 적자를 탈피하려는 사측의 시도가 단순히 흑자를 내야 한다는 경영상의 이유만이 아니라 노사 대립 등 내부 역학관계와 복잡하게 얽혀 있다고 지적한다.

KBS 노조는 6월 정연주(鄭淵珠) 사장이 경영혁신안을 발표하자 이에 반대해 집행부가 단식농성 등을 벌이며 사측과 갈등을 빚다가 급기야 7월 정 사장에 대한 불신임 투표를 실시했다. 불신임 투표 직후 노사가 극적으로 합의해 투표 결과가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당시 투표율 75%에 불신임 찬성률은 80%가 넘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같은 상황에서 올해까지 대규모 적자가 날 경우 정 사장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

또 당시 노사 간의 이면 합의 가운데는 올해 적자가 날 경우 4분기(10∼12월) 안에 경영진 임원 2명을 물러나게 하겠다는 조항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면합의 때 물러날 임원을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정 사장의 경영책임을 묻기 위한 것이니만큼 정 사장의 최측근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따라서 정 사장 등 경영진으로서는 현 경영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올해 흑자 경영을 이뤄내야 한다는 것.

KBS 한 관계자는 “사측이 재정 위기를 감안해 소송 취하 결정을 내렸겠지만 원칙대로 하자면 소송을 계속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한편 KBS는 이날 성명을 내고 “지난해 10월부터 담당 변호사와 소송 취하 및 조정 여부를 논의했기 때문에 경영 상황과는 관계없이 결정된 것”이라며 “국세청이 내년에도 2000년분 법인세 등 230억 원을 추징하겠다고 밝힌 상황에서 소송을 빨리 끝내는 것이 유리하다고 봤다”고 밝혔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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