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대한민국/21세기 新고전 50권]<13>아르떼미오의 최후

  • 입력 2005년 8월 23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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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이 발표되는 10월마다 유력한 수상후보자로 10여 년째 언론에 끊임없이 이름이 오르내리는 작가가 있다. 바로 멕시코의 소설가 카를로스 푸엔테스다. 그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더불어 라틴아메리카 문학을 국제화한 주역이다. 푸엔테스의 ‘아르떼미오의 최후’(원제를 직역하면 ‘아르테미오 크루스의 죽음’)는 세계문학의 중심으로 부상한 라틴아메리카 현대소설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또한 현대 문학 이론가들은 이 작품을 대표적인 포스트모던 소설이자 탈식민주의 작품이라고 일컫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1962년에 출간된 이 소설은 일흔한 살의 아르테미오 크루스라는 사람의 생애를 통해 1910년 혁명 이후의 멕시코 근대 역사를 다룬다. 그러나 이 소설이 현대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이런 주제와 더불어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구조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부패한 멕시코의 백만장자 크루스는 생애의 마지막 시간에 자기의 인생을 재생한다. 여기서 작가 푸엔테스는 1인칭, 2인칭, 3인칭을 이용하여 크루스의 생애를 총체적으로 그리면서 그가 살아왔던 복잡한 시대를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사용되는 1인칭 ‘나’는 침대에 누워 죽어가고 있는 늙은 주인공의 상황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2인칭 ‘너’는 죽음이라는 불확실한 미래에 관한 크루스의 생각과 그의 무의식을 보여준다. 한편 3인칭 ‘그’는 크루스의 과거를 서술한다. 이런 세 개의 목소리들은 서로 교차되어 나타나며, 그것들이 들려주는 사건들 역시 비시간적 순서로 배열되다가 마지막 순간에 하나가 된다.

그래서 언뜻 보면 뒤죽박죽인 작품처럼 보이지만, 목소리와 사건들은 서로 연결되면서 모순 덩어리인 크루스의 상이한 성격을 현실감 있게 그려낸다. 이것은 한 인간의 삶이나 국가의 정체성이 단순한 것이 아니라 매우 복잡하게 형성된 것임을 시사한다. 이런 방식으로 푸엔테스는 조국 멕시코의 문화와 역사를 단일한 시각이 아닌 다양한 관점에서 탐구한다.

푸엔테스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정치는 파편적이고 우리의 역사는 실패로 점철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의 문화적 전통은 풍요롭다. 나는 우리가 우리의 얼굴 즉, 우리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볼 때가 되어야 비로소 그런 풍요의 시간이 온다고 생각한다.”

그가 말하는 전통이란 아스텍 문화, 스페인 정복자들이 전해 준 기독교 신앙, 멕시코 혁명의 좌절된 희망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자랑스러운 역사뿐만 아니라 수치와 불명예로 점철된 역사도 모두 포함한다.

푸엔테스는 ‘아르떼미오의 최후’에서 멕시코 혁명과 그 이후의 혁명 사회를 소설 주제로 사용하지만, 그 과거를 통해 상징적으로 현대의 관심사를 말하고 조국의 미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투영한다. 그러면서 현대의 이상적인 소설이란 모험소설의 모순적인 융합과 실험적인 소설언어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험적 구조, 과거를 통한 현재와 미래의 예언, 다양한 시각의 조화가 바로 ‘아르떼미오의 최후’를 40년 넘게 장수하게 만들면서, 멕시코라는 지리적, 문화적 경계를 뛰어넘어 세계문학에 커다란 영향을 주고, 21세기 문학의 지평까지 제공하게 만든 것이다.

송병선 울산대 교수·스페인-중남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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