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KBS ‘불멸의 이순신’ 선조 무능 부각해 논란

  • 입력 2005년 8월 11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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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KBS1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토·일 오후 9시 반)이 28일 종영을 앞두고 선조와 이순신의 갈등을 드라마 전개의 주요 축으로 내세워 25% 안팎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순신이 명량해전을 대승으로 이끌었지만 선조가 면사첩(免死帖·앞으로 사형을 내리지 않겠다는 보증서)과 은 20냥의 적은 상금을 내려 홀대하는 장면이 방영된 후 많은 시청자들이 “무능한 임금이 영웅을 망치고 있다”는 소감을 드라마 인터넷 게시판에 올리는 등 극 전개에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 “선조의 입장에서 이해해야”

선조는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는 이순신에게 계속 훼방만 놓는 임금으로 그려진다.

6일 방송된 97회에서 선조는 유성룡 등이 “이순신은 보상을 위해 싸우는 장수가 아니다”라고 말하자 “군왕이 보상을 하지도 않는데 전장을 지키고 또한 전공을 올린다? 혹 그 자가 이 나라를 제 나라라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라고 말해 신하들을 놀라게 한다.

이순신

선조는 또 12척의 배로 일본 수군에 대적하겠다는 이순신에 대해 “전보다 더 오만하고 당당해졌어. (중략) 모두가 안 된다고 하는데 네 놈은 뭘 믿고 그리도 당당한 게야”라고 말한다. 격려보다 질시가 고스란히 담긴 표현이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충무공 같은 영웅이 선조처럼 사상 최악의 졸군(卒君) 아래에서 그 역량을 다하지 못했다’ ‘장군에 대한 선조의 부당한 처사는 역사의 혹독한 평가를 받을 것’ 등 마치 선조가 현재 존재하는 인물인 것처럼 그의 처사를 비난하는 글이 줄을 잇고 있다.

그러나 ‘이원익 윤두수 등 신하들의 시기로 선조가 이순신을 오해했던 것은 분명하지만 드라마가 갈등관계를 지나치게 부각시키고 있다’는 반론도 나오고 있다.

작가 송우혜 씨는 “세자에 책봉된 적 없이 왕이 된 선조는 외척 등 신권을 억제해야 한다는 통치 철학을 갖고 있었다”며 “선조가 임진왜란 당시 가장 강력한 군대였던 수군의 최고 통치자를 견제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선조의 입장에서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면사첩은 모욕 아닌 영예로운 것?

사료에 비춰 보았을 때 논란이 되는 대목이다. 최근 선조와 이순신의 갈등 관계에서 시청자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던 ‘면사첩’은 갈등을 증폭시키기 위해 드라마에 도입된 허구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선조가 이순신에게 면사첩을 내렸다는 기록은 없다. 다만 ‘난중일기’에 명나라 장수 양호가 면사첩 3만 장을 보내왔다는 대목이 나온다. 면사첩은 당시 왜군에 부역했던 사람들에게 투항을 권유하는 일종의 삐라였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또 임금이 신하에게 직접 내리는 면사첩은 모욕이 아니라 영예로운 것으로 ‘역적을 위해 거병을 하지 않는 한 앞으로 무슨 짓을 해도 죽음은 면하게 해주겠다’는 의미를 갖고 있어 임금의 신하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표현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제작진은 영웅이 아닌 인간 이순신을 보여주겠다는 제작 취지를 줄곧 밝혀왔지만 이순신이 절대권력자인 임금의 핍박을 뚫고 나가 결국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줘 또 다른 ‘영웅 만들기’를 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서울대 한국문화연구소 노영구 선임연구원은 “드라마에서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개인 간의 갈등을 너무 부각시키다 보니 역사적 인물의 행적이 실제와 달리 왜곡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불멸의 이순신’은 28일 104회로 막을 내리고 다음 달 3, 4일 제작 뒷얘기를 담은 특집방송을 내보낼 예정이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이순신과 관련된 말말말▼

○ 선조

조정을 능멸하고 임금을 기망했으며 명령에 따르지 않은 죄 죽어 마땅하나 그간의 전공을 참작 죽음만은 면해 주겠노라(97회, 선조가 이순신에게 내린 면사첩 중에서).

○ 주위 인물들

이순신은 황상의 장수인 천장 열명을 합쳐도 견줄 수 없는 불세출의 영웅인 바, 외신(外臣) 크게 감명을 받았습니다(98회, 명나라 양호가 선조에게 한 말).

오직 나라의 안위만을 걱정하며 일평생을 살아온 자네에게 하늘도 또한 군왕도 너무 무심하지 않은가(98회, 유성룡이 이순신에게 건넨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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