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육·해·공 스피드 세계 만끽 최옥만 기장 사는법

  • 입력 2005년 6월 10일 09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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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땅 바다에서 질주의 쾌감을 즐기는 최옥만 기장. 요트와 산악 자전거는 서로 다른 속도의 세계를 안겨준다. 그 위로 비행기가 날아가고 있다. 강병기기자
하늘 땅 바다에서 질주의 쾌감을 즐기는 최옥만 기장. 요트와 산악 자전거는 서로 다른 속도의 세계를 안겨준다. 그 위로 비행기가 날아가고 있다. 강병기기자
《그는 지금 하늘에 떠 있다.

3만 피트(9144m) 상공, 속도는 시속 800km.

대한항공 보잉747 선임기장 최옥만(49) 씨처럼 다양한 속도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도 드물다.

그는 비행기는 물론 요트 수상스키 제트스키 행글라이더 윈드서핑 산악자전거(MTB) 등 ‘육해공(陸海空)’에서 속도를 즐겨왔다. 최근 그의 생활을 재구성했다.》

○ 착륙-350t의 예술

어느새 인천 국제공항이 다가온다. 착륙을 준비해야 한다. 26년 경력의 파일럿이지만 이착륙 순간은 언제나 긴장되고 예민해진다.

‘점보’라는 별명이 붙어 있는 보잉747은 약 110t의 비행기 무게를 포함해 승객 화물 연료의 무게를 보태면 350t에 이른다. 티코(약 700kg) 자동차 500여 대의 중량이다. 바퀴 하나의 무게만 300kg이 넘는다. 속도를 160노트(296km)로 줄이고 랜딩 기어를 내렸다. 이 기어는 순간 하중이 800t까지 견딜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활주로가 미끄러운 편이어서 제동거리를 줄이기 위해 ‘펌 랜딩(Firm Landing)’을 선택했다. 쿵! 착륙이다. 펌 랜딩은 승객의 안전을 고려한 방식이다. 소프트 랜딩이 아닌 펌 랜딩을 하면 승객들은 파일럿의 실력을 의심하지만 그것과 상관 없다.

반나절 만에 밟는 땅의 감촉이 새롭다. 땅에 발을 붙이고 시속 4∼5km로 걷는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왔다. 최 기장은 현재까지 1만5000여 시간(625일)을 하늘에서 지냈다. 집이 있는 여의도로 가는 차가 시속 100km 안팎으로 기분 좋게 달린다.

○ 하늘에서 생긴 스트레스를 풀다

비행기에서 내려 차를 타자 3차원의 세계에서 2차원의 세계로 들어온 느낌이다.

자동차가 지면과 밀착돼 움직이는 선(線)의 2차원적 세계라면 비행기 조종은 공간 개념이 들어 있는 3차원의 세계다. 여기에 비와 바람, 각종 기류, 활주로의 상태 등 외부 조건까지 고려해야 하므로 비행기 조종은 훨씬 복잡하다.

“300명이 넘는 승객의 생사가 달려 있는 비행은 피를 말리는 일입니다. 그래서 일단 땅에 내려오면 하늘에서 생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강으로 달려갑니다.”

집에서 짐을 풀자마자 그가 가는 곳은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요트클럽. 자동차가 아닌 MTB를 선택했다. 항공기 소재인 티타늄을 사용한 자전거 무게는 10kg가 조금 넘어 한 손으로도 들 수 있다.

○ 파일럿에서 요트맨으로

베테랑 파일럿이지만 먼저 접한 것은 요트였다.

1975년 대학 1학년 때 충남 대천해수욕장에서 ‘샤크’라는 이름이 붙은 1인승 요트를 탔다. 결과는 처참했다. 준비는 꽤 했지만 제대로 조종하지 못하고 바다에 둥둥 뜬 채로 표류했다. 무언가를 조종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의 오기는 이때부터 생겼는지 모른다. 대학 시절 요트에서 얻은 경험은 나중에 파일럿이 됐을 때 적지 않은 도움이 됐다.

1903년 라이트 형제가 첫 비행에 성공하기 전 까지 인간이 이동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교통수단은 배였다. 항해의 기본적 원리는 비행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내비게이션(Navigation·항해, 비행)’, ‘노트(Knot·속도의 단위)’, ‘캡틴(Captain·선장, 기장)’, ‘크루(Crew·승무원)’, ‘갤리(Galley·조리실)’, ‘캐빈(Cabin·선실)’ 등 요즘 항공기에서 사용되는 단어들은 이같은 상관관계를 보여준다. 배의 러더(Rudder·키)는 비행기 꼬리날개의 수직 부분이 됐고, 항해등의 색깔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1995년 그는 세일(Sail·돛) 등 각종 부품을 끌어 모아 크루저(Cruiser)를 조립해 자신의 요트를 갖겠다는 오랜 꿈을 이뤘다. 이때부터 강과 연안에서 10노트(약 19km) 수준으로 세일링을 하면서 수상스키 제트스키 윈드서핑 등 다른 수상스포츠도 함께 즐기기 시작했다.

○ 나는 조종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는 최근 화이트카드(항공종사자 신체검사증명서)를 받았다. 6개월마다 받는 까다로운 조종사 대상의 신체검사를 통과했다는 증명서다. 하늘과 바다, 강, 산…. 그는 어디에서 가장 짜릿한 행복감을 느낄까?

“비행기 조종석에서는 시야가 막힌 객실과 달리 200도 각도로 하늘을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의 무한함과 경이로움에 놀랍니다.”

그는 이어 “수상 스포츠의 매력은 속도감을 몸으로 체험할 수 있다는 겁니다. 시야가 좁아지면 체감 속도가 더 빨라지는데 몸으로 물살을 가르는 느낌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아침가리골(강원 인제군)의 산길을 MTB로 내려오는 것도 매력적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결론은 평생 속도 속에 살아온 그의 삶과 달랐다.

“은퇴하면 요트를 타고 바다로 나갈 겁니다. 기계의 동력을 이용한 스포츠는 끝이 보이더군요. 요트는 바람이 없으면 바람을 찾고, 또 기다려야 합니다. 성격상 죽을 때까지 무언가를 조종하고 있겠지만, 확실한 것은 더욱 ‘느리게’ 살아가겠다는 겁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최기장이 말하는 최고속 세계▼

MTB를 즐기는 최옥만 기장.

속도의 세계는 경이롭다. 첨단 과학의 발달로 새로운 단어가 등장하는 등 하루가 다르게 빨라지고 있다.

노트는 16세기경부터 항해용 단위로 쓰이다 비행에까지 도입된 단위다. 기호는 kt 또는 kn으로 1시간에 1해리(1852m)를 가는 속도가 1노트다. 이 명칭은 당시 배 끝에 삼각형의 널조각을 끈에 매달아 흘려보내면서 그 끈에 28피트(약 8.5m)마다 매듭(knot)을 짓고 풀린 끈의 매듭을 세어 속도를 쟀던 것에서 유래됐다. km로 환산하려면 1.852를 곱하면 된다.

자동차보다 빠른 배도 있다. ‘날아다니는 배’로 불리는 위그선(Wing In Ground)은 시속 500km까지 속도를 낸다. 위그선이 이처럼 빠른 것은 수면 위 3∼5m에서 떠다니기 때문이다. 배가 아니라 비행기라는 주장도 있었지만 국제해사기구(IMO)로부터 배로 판정받았다.

마하는 총알 비행기 미사일 등 고속 비행체나 고속기류가 공기 속에서 흐를 때의 속도를 측정하기 위해 도입됐다. 마하 1은 약 시속 1200km이다. 하지만 절대적인 속도 단위가 아니다. 어떤 물체의 속도가 소리 속도에 비해 얼마나 빠르거나 늦느냐는 상대적 개념이다. 물체의 속도가 일정해도 공기의 밀도와 온도에 따라 마하 숫자는 달라진다.

속도에 관한 흥미로운 기록도 있다. 미국 과학전문지 ‘파퓰러 사이언스’는 2월호에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속도 기록’을 소개한 바 있다. 1973년 캔터기 더비에서 세크러테리엇은 시속 60km로 가장 빠른 순종 말로 기록됐다.

‘가장 빠른 자가 동력 인간’의 속도는 시속 130km. 2002년 캐나다 샘 위팅햄이 탄환 모양의 자전거를 타고 미국 네바다 주에서 평지 코스를 시속 130km로 주파했다.

트러스트 SSC라는 명칭이 붙은 시험용 자동차는 1997년 시속 1220km로 세계 최고속 자동차로, 미 항공우주국(NASA)의 시험비행기 ‘X-43A’는 2004년 시속 1만900km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비행기가 됐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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