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人3色/이은희]재능은 선천적? 후천적?

  • 입력 2005년 5월 28일 07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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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타고나는 것인가, 만들어지는 것인가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순간은 경이롭다. 갓난아이가 토해내는 울음은 세상에 대한 첫인사이자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증명인 셈이다. 이렇게 귀한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들은 한없이 기쁘면서도 걱정이 앞선다. 하나의 생명이 태어난다는 것은 곧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또 하나의 세계가 열린다는 것이기에, 부모에게는 아이가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 가는 데 꼭 필요한 길잡이가 되어야 할 의무가 더해지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절반쯤은 아이에게는 타고난 재능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아이가 크레용을 쥐고 낙서를 하면 회화에 재능이 있는지를 살피고, 장난감 블록을 제법 높이 쌓아올리면 건축에 재능이 있는지 내심 기대하게 된다. 그리고 한번쯤은 ‘우리 아이가 정말 천재가 아닐까’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한다. 나머지 절반의 부모들은 아이들은 깨끗한 백지와 같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하얀 종이 위에 멋진 밑그림을 그려주는 것이 부모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좀 더 양질의 교육을 받게 해주는 것, 다양한 경험과 학습을 통해 세상을 배워 나가도록 하는 것이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들 모두는 과연 자신의 지론이 정말로 옳은 것인지 스스로를 의심하며, 다른 편의 전략에 기웃거린다. 사실 인간의 본성과 양육이 하나의 인격체를 형성하는 데 미치는 영향은 지난 100여 년간 근대 사회를 뒤흔든 논의의 중심이었다.

1996년 태어난 복제양 돌리가 생물학사에서 지니는 진정한 의미는? 돌리의 탄생은 ‘생명체는 유전자의 발현체다’라는 명제의 최종적이고도 확실한 증명이었다. 돌리는 생명 탄생에 있어 유전자가 얼마나 많은 기여를 하는지를 알기 위해 체세포의 핵은 흰 양에게서, 이 핵을 넣어서 발생시킬 난자와 자궁을 빌려줄 대리모는 얼룩무늬 양에서 골랐다. 결국 돌리는 완벽한 흰색 털을 가지고 태어남으로써, 생명의 청사진이 핵 속의 유전물질, 즉 DNA에 들어있음을 완벽하게 증명했다. 그리고 그 사실은 어떤 이들에게는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생명체의 모든 지도가 유전물질 속에 들어 있다면, 인간의 본성은 고착된 것이 되고 양육은 선천적인 특질을 변화시킬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이는 20세기 전반, 세상에 휘몰아쳤던 우생학의 광풍을 떠올리게 했다. 과연 인간 역시 유전자의 조합으로만 이루어진 표현형에 지나지 않을까?

이런 세간의 우려에 미국 콜드 스프링하버 연구소의 객원교수이자 과학저술가인 매트 리들리는 이렇게 말한다. 게놈에 대한 연구는 생물학적 기반지식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왔지만 그것이 양육과 본성의 논쟁에서 본성의 손을 들어준 것은 아니라고. 단지 양쪽의 논쟁이 중간에서 만날 수 있을 만큼 풍부한 주장을 갖게 되었음을 의미한다고. 인간의 양육과 본성의 논쟁을 다룬 그의 책 ‘본성과 양육’(김영사)의 원제가 ‘Nature Versus Nurture’가 아니라, ‘Nature via Nurture’인 것에 주목하자. 양육과 본성은 대립적인 성질이 아니라, 유전자는 환경과 반응하면서 자신이 만든 것을 해체하거나 재구성하는 형태로 자연에 적응한다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우리 아이를 똑똑하게 만드는 비법’ 유의 책에 눈이 간다면 그보다는 먼저 리들리의 책을 집어 드는 것이 어떨까. 여기서 한 발 나아가 좀 더 직접적인 정보를 얻고 싶다면, 신경학자 리즈 엘리엇이 자라나는 아이들의 뇌 속 변화를 설명한 ‘우리 아이 머리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궁리)를, 마음먹고 커다란 과제에 도전하는 기분이라면 스티븐 핑거의 ‘빈 서판(Blank Slate)’(사이언스북스)이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이은희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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