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속의 오늘]1975년 세계 첫 여성 에베레스트 등정

  • 입력 2005년 5월 15일 18시 47분


코멘트
‘에베레스트 마마 상.’

세 살 난 딸아이는 자나 깨나 에베레스트만 생각하는 엄마를 이렇게 불렀다.

일본의 다베이 준코(田部井淳子·66) 씨가 1975년 5월 16일 여성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지구 최고봉인 에베레스트에 올랐다. 36세의 ‘아줌마’가 이룬 쾌거였다.

키 150cm의 왜소한 몸집이어서 ‘철녀(鐵女)’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다베이 씨는 약하고 겁이 많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고 한다.

그녀가 산을 처음 만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교사를 따라 산에 갔다가 신천지가 눈앞에 열리는 듯한 환희를 경험했다. 나중에 그녀는 “경치도 좋았지만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부담 없이 내 페이스대로 가도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맛보았다”고 회고했다.

대학 졸업 후 본격적인 등반을 시작한 그녀는 동료 산악인과 결혼한 뒤 궁극적 목표인 에베레스트에 도전할 계획을 세웠다.

1972년 딸을 낳고 몸을 추스르자마자 3년간 아이가 잠든 뒤 매일 밤 19km씩 뛰고 일요일이면 대원들과 함께 새벽부터 등반훈련에 몰두했다. 틈날 때마다 피아노 레슨을 하며 장비 구입을 위한 돈을 모았다.

다베이 씨가 이끄는 ‘여성 원정대’가 드디어 에베레스트 정상을 향해 차근차근 오르던 중인 1975년 5월 4일. 눈사태가 이들이 자던 텐트를 덮쳤다. 셰르파(안내인)가 10m 두께의 눈 더미를 파헤쳐 구출했을 때 다베이 씨는 의식을 잃고 발목을 다친 상태였다. 죽을 뻔한 위기를 겪었지만 그녀는 계속 오르기를 고집했다. 온몸이 멍투성이인 데다 제대로 걸을 수도 없어 거의 기다시피 해 정상에 올랐다.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뒤에도 그녀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53세인 1992년엔 세계 7대륙의 최고봉을 다 오른 최초의 여성이 됐다. 2000년 규슈(九州)대에서 히말라야의 쓰레기 문제를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지금은 히말라야 환경보호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그녀는 에베레스트에 오를 때 가장 중요한 도구가 뭐였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기술과 능력만으로 정상에 오를 수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의지다. 살 수도 없고 외부에서 주어지지도 않으며 오로지 자신의 심장에서만 우러나오는 의지….”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