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데이트]'건달 전문 배우'…오!달수

  • 입력 2005년 3월 24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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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인생
달콤한 인생
최근 한국영화는 두 종류로 구분된다. 배우 오달수가 ‘나오는 영화’와 ‘나오지 않는 영화’.

2003년 ‘올드보이’에서 사설 감금방 주인 철웅으로 나와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오달수(37). 그가 이달 중순 개봉돼 흥행돌풍을 일으킨 영화 ‘마파도’에 이어 다음달 1일 나란히 개봉되는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과 류승완 감독의 ‘주먹이 운다’에 동시에 조연으로 등장한다. 6월 개봉 예정인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에도 무게 있는 조연으로 기용됐다. 한국 영화계의 미래를 짊어진 감독들은 왜 그를 편애(?)하는 것일까.

23일 자정 무렵 오달수를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한 주점에서 만났다. 그는 자신이 대표로 있는 극단 ‘신기루 만화경’이 24일부터 공연하는 연극 ‘몽타쥬 엘리베이터’의 리허설을 막 마친 후였다.

“많이 출연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작품의 질이나 연기의 완성도가 중요한 거죠. 감독님들이 저를 기용하시는 건… 아무래도 저를 귀엽게 봐 주시나 봐요. 하하.”

‘달콤한 인생’에서 그는 총기 밀매업자의 하수인 명구 역을 맡았지만 사실 처음 그에게 주어진 것은 이보다 대사가 20배는 많은 역이었다. 그러나 그는 명구를 택했다.

“명구 역이 비중은 훨씬 작지만 임팩트는 크겠다고 확신했어요. 제가 계속 고집하니까 김지운 감독님이 비중 큰 역의 대사를 읽어보라고 하더군요. 제가 읽는 걸 듣더니 ‘그래, 너 좀 부담스럽겠다’ 하시대요.” (올해로 서울 생활 9년째지만 그의 말에는 아직도 부산 사투리의 억양이 강하게 남아 있다)

2002년 ‘해적, 디스코왕 되다’로 영화에 데뷔한 이래 그가 깊은 인상을 남긴 역은 주로 조폭 또는 건달이었다. 그의 얼굴은 야비함, 선함, 어눌함을 모두 담고 있다. 때문인지 영화 속에서 그가 불러오는 웃음은 왠지 어둡다. 포복절도하는 코미디는 그의 전공이 아니다.

“저를 두고 ‘건달 전문 배우’라고 하더군요. 식상하면 어쩌나 걱정도 하지만 이미지를 바꿀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온다고 믿어요. 저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고, 관객들이 즐거워한다면 해도 부끄러워할 것 없어요.”

그는 1989년 부산 동의대 공업디자인과에 다니며 인쇄소 아르바이트를 할 때 지역 극단 가마골에 팸플릿을 배달하다 연극에 빠졌다. 연극에 몰두한 뒤 수업을 빼먹다보니 졸업 한 학기를 남겨두고 수업일수 부족으로 ‘자연스럽게’ 제적됐다. 1997년 연극 ‘남자충동’에 출연하면서 서울로 온 뒤, 2000년 지금의 극단을 만들었다.

“2002년 월드컵 때가 최악이었어요. 일본의 ‘분가쿠쟈(文學座)’ 극단과 합작공연을 했는데 우리나라가 4강까지 올랐잖아요. 관객은 없고, 일본 팀 체재비는 대야 하고…. 결국 연습실 보증금까지 다 까먹고 빚더미에 올랐어요.”

그때부터 영화 오디션에 뛰어들었다. ‘연극배우 오달수’에서 ‘영화배우 오달수’를 끄집어낸 것은 박찬욱 감독이었다. 박 감독은 6명의 감독들이 함께 만든 옴니버스 영화 ‘6개의 시선’ 중 자신의 작품에 오달수를 출연시켰고, 이후 그를 ‘올드보이’에도 기용했다. 오달수의 요즘 영화 한 편 당 출연료는 2500만 원 대. 첫 영화 출연 때보다 여덟 배나 올랐다. 영화 출연료로 그동안 진 빚을 다 갚은 현재 그의 통장의 잔고는 ‘0’.

“연극이든 영화든 제가 연예인이 아니라 배우로 살 수 있다면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연극에 대한 애정을 공유하는 단원들이야말로 제 자부심이자 자존심이지요.”

그에게는 여섯 살 된 딸이 있다. 아이의 티 없이 맑은 눈을 보면서 오달수는 자신의 마음을 다잡는다고 했다.

“백윤식 선배처럼 나이 들어서도 사람들 앞에서 연기를 할 수 있는 배우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밖에 없어요. 저는 ‘주연을 먹는’ 조연이거든요. 만약 주연이 저한테 ‘먹히지’ 않으면 제 연기는 그걸로 끝이지요.”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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