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하느님이 여자였던 시절’ ‘여신’

  • 입력 2005년 3월 4일 16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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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창세기의 아담과 이브 신화에는 남성 신 종교에 의한 여성 신 종교의 억압이 숨어 있다고 멀린 스톤은 주장한다. 라파엘로의 프레스코화 ‘아담과 이브’. 동아일보 자료사진
성경 창세기의 아담과 이브 신화에는 남성 신 종교에 의한 여성 신 종교의 억압이 숨어 있다고 멀린 스톤은 주장한다. 라파엘로의 프레스코화 ‘아담과 이브’. 동아일보 자료사진
◇하느님이 여자였던 시절/멀린 스톤 지음·정영목 옮김/407쪽·1만5000원·뿌리와 이파리

◇여신/샤루크 후사인 지음·김선중 옮김/194쪽·2만5000원·창해

성경 ‘창세기’에서 뱀의 꼬임에 속아 선악과를 따먹고, 그것도 모자라 아담까지 유혹해 마침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이브. 이후 남성들을 타락시키는 것은 여성이며, 여인들이 악의 근원이라는 오명을 쓰게 만든 이브. 그런데 이 비난받아 마땅한 이브는 왜 ‘모든 생명의 어머니’라는 훌륭한 뜻을 갖고 있을까. 이브는 단지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어지지 않았던가.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신화에는 닌후르사그라는 모신(母神)이 여신 닌티(‘갈비뼈의 숙녀’ 또는 ‘생명을 주는 부인’이라는 뜻)를 만드는 과정에서 물의 신 엔키의 갈비뼈를 고쳐줬고, 닌티는 출산의 수호신이 되어 예비 어머니들의 갈비뼈에서 신생아를 만들어 냈다는 내용이 있다.

뭔가 비슷하다. 책 ‘여신’의 저자는 아담과 이브의 신화가 바로 이 메소포타미아 신화를 개악한 것으로 추측한다. 유대교에서 ‘알 수 없고 형체가 없는’ 지혜로서, 그리고 야훼의 배우자로서 숭배받던 여신은 살과 피가 있는 이브로 창세기에 등장하면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하게 되고 모든 신성(神性)은 제거됐다는 것이다.

책 ‘하느님이 여자였던 시절’의 저자 멀린 스톤은 아담과 이브의 신화가 여성 종교를 탄압하기 위한 목적으로 고안된 것임을 확신한다. 뱀, 신성한 열매를 맺는 나무, 뱀의 조언을 받아들이는 유혹적인 여자 등의 상징은 구약시대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여성 신의 종교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이 두 책은 기독교나 이슬람교, 유대교가 만들어지기 훨씬 이전의 시대에 여성 신이 최고의 창조주였던 종교들이 있었으며, 기원전 7000년경부터 가부장제의 인도유럽인족들이 중·근동 지역의 북쪽에서 대대적으로 남하해 오던 기원전 4000년경까지가 여성 신의 ‘황금기’였다고 밝힌다.

책 ‘여신’이 구석기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세계 문화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여신 숭배를 객관적으로 고찰한 백과사전이라면, 책 ‘하느님이 여자였던 시절’은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여신 숭배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억압되고, 조작 은폐되어 지금의 불평등한 여성의 지위를 낳았는지를 파헤친 르포다.

그래서 원래 여성에게 속했던 힘이 남성에게 옮겨갔다는 사실이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오세아니아의 신화들에 대해 ‘여신’은 “이성 간에 내재된 갈등이나 상호보완적 특성을 원시적으로 표현한 것이거나, 또는 역사적 사실들을 우화적으로 표현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한다. 이에 반해 ‘하느님이 여자였던 시절’은 비록 중·근동 지역에 국한하기는 하지만, “남성 중심적 부계사회의 계속된 침략과 억압의 반영”이라는 해석에 무게를 둔다.

기독교 신자들이 보면 당황해할 내용들도 많다. 예를 들어 성모 마리아가 인류의 구원을 위해 죽은 뒤 사흘 만에 부활하는 신의 화신을 낳은 것은 그 이전의 데메테르, 이시스, 아스타르테, 키벨레 등 여성 신들의 모습을 그대로 이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아직도 가톨릭을 믿는 여러 나라에서는 이런 여신들이 성모 마리아로 변형돼 숭배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여신들은 자신 안에 여성과 남성, 창조와 파괴, 삶과 죽음 등 모든 상반되는 것들을 품고 있었다고 한다. 이분법적으로 날카롭게 대립하는 오늘날의 양상은 어쩌면 남성 종교가 가져온 폐해일 것이다. 이 책들에서 우리는 인류의 화해와 조화를 위한 조그만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원제는 ‘When God Was A Woman’(1976년), ‘The Goddess’(1997년).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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