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이탈리아에서 온 편지 1, 2’

  • 입력 2005년 2월 25일 17시 31분


◇이탈리아에서 온 편지 1, 2/시오노 나나미 지음 1권 이현진 2권 백은실 옮김/각권 232, 272쪽·각권 1만2000원·한길사

‘로마인 이야기’ 작가 시오노 나나미의 초기 글을 담은 에세이집이다. 작가로 등단한 뒤 30, 40대에 쓴 글들이다. 작가의 작품세계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이 에세이집을 시작으로 독서 범위를 넓혀 가면 좋겠다.

1972년에 선보인 ‘…편지1’은 로마 단상이다. 30여 년의 시차가 있지만 한 작가의 처녀작을 보면서 ‘로마인 이야기’라는 대작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재미가 쏠쏠하다. 강인하고 냉철하면서도 품위 있고 관능적인 시오노 나나미 특유의 시선이 이때 이미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특히 로마를 ‘불멸의 고급 콜걸’에 비유한 대목이 눈에 띈다.

‘(로마는) 스스로는 무엇 하나 노력해서 생산할 줄 모른다. 그렇다고 돈 주고 뒷바라지해 주는 남자가 부족해 본 적 없는 아름다운 창부, 지금 와서는 나이가 좀 들었지만 아직도 장래를 생각해서 저축을 한다든지 생활설계를 한다는 것과는 무관한 여자, 오다가다 객사한다 한들 그게 무슨 한이 되느냐고 여기는 타고난 낙천가, 로마는 그런 자유로운 여자만이 갖는 매력으로 언제나 남자 마음을 흔들어 놓는 그런 도시다.’

‘…편지 2’는 ‘…편지 1’보다 몇 년 뒤인 1979년 2월∼1981년 12월 잡지에 연재한 글들을 묶은 것이다. 지적 호기심이 왕성한 시오노 나나미가 10여 년의 창작 세월을 보낸 뒤, 쓰고자 했던 주제를 조사하면서 느낀 단상을 묶었다. 대가가 작품을 만들어 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것을 조사하고 생각하고 발품을 파는지를 엿보게 하는 일종의 작업노트 격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어학하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천성적인 ‘귀’가 없어, ‘승진이 약속된 사람’을 ‘약속이 승진된 사람’이라는 실수를 할 정도로 현대 이탈리아어에 악전고투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도 고대 이탈리아어와 베네치아 방언으로 쓰인 1급 고문서들을 해독하는 독해력을 갖추기 위해 고문서관이나 도서관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그의 에세이를 보면, 고지도나 보고서 편지를 주도면밀하게 분석하면서 역사상 인물이 살았던 시대를 공감하기 위해 분투한 덕분에 긴장감 있고 박진감 넘치는 작품을 썼음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벤저민 프랭클린의 편지를 통해 소개한 ‘역사란 그것이 일어난 시점에 서서 같은 시대 사람들 틈에 끼어서 바라보면 참으로 유쾌해진다’는 토로는 기억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현재 한국의 과거사 논쟁에 비춰보면 묵직한 울림을 준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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