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나를 찾아 떠난 네팔 트레킹

  • 입력 2005년 1월 20일 15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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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 5대 뷰포인트인 푼힐전망대(3193m)에서 바라본 안나푸르나 다울라기리. 8000m급 거봉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안나푸르나 5대 뷰포인트인 푼힐전망대(3193m)에서 바라본 안나푸르나 다울라기리. 8000m급 거봉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일상 탈출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시도하고 싶은 여행이 있다.

네팔 트레킹.

히말라야는 머물지 않는 삶을 갈구하는 사람들의 갈증을 풀어준다. 세상에 찌든 마음 속 쓰레기들을 만년설에 뒤덮인 히말라야의 찬바람이 깨끗이 날려준다.

그러나 웬만한 결심으로는 엄두도 나지 않는 여행. 우리 부부는 1년 가까이 벼르던 끝에 신년 네팔행을 감행했다. 평생 두 번 다시 가기 힘든 여행지인 만큼 60대이신 시부모님도 모시고 갔다.

○안나푸르나는 초보자에게 무난한 코스

네팔 트레킹 코스는 안나푸르나, 랑탕, 에베레스트 3개 지역으로 나뉘는데 해발 3200m로 고산병의 우려가 적은 안나푸르나를 선택했다. 눈을 직접 밟을 수 없다는 것이 아쉽지만 우리 같은 초보자가 도전하기에는 무난한 코스였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하려면 포카라를 거쳐야 한다. 카트만두에서 포카라까지는 비행기로 40분. 트레킹 기점은 포카라에서 차로 1시간 정도 걸리는 나야풀. 티베트 난민들이 많이 사는 곳이다. 반지나 팔찌 등 작은 수공예품을 만들어 관광객들에게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데 물건을 팔려는 그들의 태도가 어찌나 집요하던지.

어렵사리 뿌리치고 포터들에게 짐을 내주었다. 우리 일행 4명을 안내하는 포터는 모두 8명. 6일 동안 먹을 식재료와 조리도구, 우리 가방까지 30kg이나 되는 짐을 이마에 걸치고 가파른 산길을 하루 종일 오른다. 그 대가로 지불하는 돈은 하루 5∼7달러. 체격이라도 건장하면 괜찮을 텐데 비쩍 마른 그들에게 고된 일을 시키는 것 같아 내내 미안했다.

드디어 트레킹이 시작됐다. 해발 7000∼8000m급 히말라야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나타나더니 어느새 골 깊은 계곡이다. 가파른 산등성이에 아슬아슬 걸려 있는 산간마을 풍경이 경이롭다. 짐을 가득 실은 채 노인네의 이마 주름처럼 파인 밭고랑 사이를 지나던 조랑말 행렬. 쏟아져 내릴 듯 깨알 같은 별들이 총총히 빛나던 푼힐의 새벽하늘을 잊을 수가 없다.

○침낭 속에서 되찾은 대화

포터들은 정이 참 많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우리보다 더 멀리 더 빨리 가면서도 오히려 우리에게 한국말로 “천천히∼ 천천히∼”라며 격려한다. 늘 먼저 숙소에 도착해 따뜻한 차를 준비해 놓고는 길을 되돌아와 다시 우리를 안내했다.

산행 4일째. 촉촉한 가랑비가 내리던 이날은 좀 버거웠다. 보통 11월∼3월은 건기(乾期)여서 비가 적고 트레킹하기 좋다는데 이날은 예외였다.

길도 험한데다 미끄러워 예정보다 2시간이나 늦었다. 늦은 점심을 먹고 나니 오후 3시. 비는 오는데 다음 목적지까지 갈 길은 멀고. 무엇보다 카메라 장비가 물에 젖으면 큰일이다. 오늘은 이곳에서 묵기로 했다.

막상 머무르기로 하니 막막했다. 얇은 나무판자로 어설프게 가려져 그저 바람막이만 해주는 산속의 숙소는 좁고 딱딱한 나무침대만 달랑 놓여 있다. 전깃불이 없으니 책을 볼 수도 없고 비에 젖어 몸은 으슬으슬 떨려오고…. 이곳은 일교차가 심해 해가 나면 반소매옷을 입을 정도로 따뜻했지만 해가 지면 파카로 완전무장을 해야 했다.

침낭 안에 들어가 저녁식사 때까지 하릴없이 누워 있기로 했다. 날은 침침했지만 벌건 대낮부터 꼼짝없이 누워 있자니 웃음이 났다.

그런데 포터들은 밖에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시간을 보낸다. 남편은 “몸은 이렇게 누워 있는 우리가 편하지만 왠지 우리가 더 불쌍해 보이네”라고 말해 또 한번 웃고 말았다. 하지만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웠던 그 순간, 우리는 오랜만에 참으로 많은 대화를 나눴다.

○해뜰 무렵의 눈 덮인 히말라야 거봉

트레킹 중 체온을 뺏기면 고산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해서 우리는 산행 내내 머리도 못 감고 고양이 세수만 했다. 다행히 공기가 맑아서인지 그런대로 견딜 만했다. 외모에 신경 쓰는 것에서도 벗어나니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진다.

때로는 원시림이 우거진 숲이, 때로는 완만한 구릉지가, 또 때로는 한국 산과 같은 가파른 길과 계곡이 번갈아가며 나타났다. 변화무쌍한 코스 덕분에 지루할 것 같았던 트레킹길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또 첫날이 지나고서 허벅지와 종아리가 뻐근했던 것을 빼고는 체력에도 별로 문제가 없었다.

5일째 되던 날. 촘롱에선 다른 날보다 일찍 일어났다. 안나푸르나 5대 뷰 포인트 중 하나로 해뜰 무렵 눈 덮인 히말라야 거봉이 기막히게 아름답기 때문이다. 이곳 유럽풍 카페를 겸한 숙소는 산행 중 유일하게 국제전화를 할 수 있는 곳이다. 전화를 하는데 주인이 옆에 바짝 붙어앉아 초시계를 보며 시간을 잰다. 한국은 1분에 300루피(약 5000원).

촘롱을 출발해 깊은 계곡 안에 폭 파묻혀 있는 지누단다 마을을 거쳐 키미 마을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다. 이날은 우리가 큰 맘 먹고 포터들에게 맥주를 샀다. 맥주는 포터들에게 감히 접할 수 없는 귀한 술이다. 이곳은 신분제도가 남아 있어 여행객과 포터가 함께 어울리는 것도 금기사항. 맥주를 대접받은 그들은 너무나 고마워했다.

마지막 날, 트레킹 시발점이자 마지막 기착지인 나야풀에 먼저 도착한 포터 중 막내인 데코마르가 되돌아와 30분 남짓 되는 남은 여정을 같이 걸었다.

아쉬운 작별의 시간. 섭섭함을 감추지 못하며 내내 손을 흔들던 포터들의 해맑은 눈망울이 눈에 선하다. 눈치 볼 것도 없고 경쟁할 것도 없는 이곳에서 잠시나마 마음을 비울 수 있었지만 서울에 돌아가면 며칠 만에 또다시 욕심이 꿈틀대며 되살아날지.

○여행 정보

초행길 히말라야 트레킹은 가급적 트레킹 전문 여행사를 통하는 것이 좋다. 외국에서는 현지 음식을 먹는 것도 좋지만 여러 날에 걸쳐 산길을 걸어야 하는 트레킹에서만큼은 예외. 한국음식을 요리할 수 있는 포터가 안내하기 때문에 산중에서 한국음식을 해 먹을 수 있다. 티엔씨여행사 02-733-0125


글=최미선 여행플래너 tigerlion007@hanmail.net

사진=신석교 프리랜서 사진작가 rainstor495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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