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카페]‘서희…’ 펴낸 장철균씨

  • 입력 2004년 12월 3일 16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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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외교통상부는 힘든 시기를 겪었다. 김선일 씨 피살사건을 미숙하게 처리하고 중국 정부의 고구려사 왜곡에는 미적지근하게 대응해 지탄을 받았다. 외교관들은 의기소침해졌다. 이들에게 힘을 불어넣어 줄 외교관상(像)은 없을까?

30년 동안 외교관으로 봉직했던 장철균 재외동포재단 기획이사(54·사진)는 10세기 고려를 침략한 거란으로부터 ‘세 치 혀’만으로 280리 강동 6주(현 평북 지역)를 되찾은 서희에게서 희망을 본다.

장 이사는 주라오스 대사로 일하던 2002년부터 2년여 동안 ‘고려사’ 등 서희와 관련된 사료 및 각종 자료들을 연구해 최근 ‘서희의 외교담판’(258쪽·1만 원·현음사)을 펴냈다. 또 자신이 국제정치 현장에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뛰어난 외교관’으로서의 서희를 분석했다.

“고려 조정은 거란이 요구하는 땅을 내주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서희는 거란의 진의를 면밀히 파악한 뒤 합리적인 근거를 대며 왕과 대신들을 설득해 결정을 바꿨어요. 훌륭한 외교관이 가져야 할 냉철한 정세판단력을 보여 준 겁니다.”

거란의 사령관 소손녕은 협상하러 온 서희에게 군영 밖 뜰에서 신하의 예를 갖출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서희는 “나는 대등한 협상자 자격으로 왔다”며 말머리를 돌려 숙소로 돌아가 며칠간 나오지 않았다. 결국 소손녕이 머리를 숙였고 서희는 회담장 문 앞까지 당당히 말을 타고 갔다.

“의전(儀典)은 곧 기(氣)싸움입니다. 그래서 회담 전에 의전 요원들은 상대국과 복잡한 교섭을 합니다. 의전은 종종 회담 결과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요. 서희는 바로 그 기싸움에서 상대를 압도하는 기세를 보인 겁니다.”

이 밖에도 서희는 협상이 결렬될 뻔한 상황에선 적절한 타협안을 제시했고, 소손녕과 합의한 내용을 거란 황제에게 즉시 알려 재가를 받게 하는 등 현대의 비준절차를 밟듯 꼼꼼하게 처리하는 전문 외교관의 자세를 보였다.

장 이사는 “한 명의 좋은 외교관이 1개 사단의 군대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며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서희는 12척의 배로 300척의 왜선을 격파한 이순신 장군과도 비견할 만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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