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대한민국 Power Dinner

  • 입력 2004년 8월 26일 16시 18분


코멘트
어느 사회든 본격적인 인간 관계는 식사로 시작된다. 한국의 파워 피플들은 업무상 중요한 식사를 할 때면 별실이 있는 고급 식당을 찾는다. (촬영 협조=63빌딩 백리향, 모델=63시티 김병호, 이성호 과장)
어느 사회든 본격적인 인간 관계는 식사로 시작된다. 한국의 파워 피플들은 업무상 중요한 식사를 할 때면 별실이 있는 고급 식당을 찾는다. (촬영 협조=63빌딩 백리향, 모델=63시티 김병호, 이성호 과장)
어느 사회든 힘 있는 인사들이 찾는 식당은 역사의 무대가 된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서울 여의도 63빌딩의 회원제 식당인 거버너스 챔버는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정몽준 후보가 후보 단일화 문제를 논의한 곳이다.

서울 프라자호텔에서는 정치인들이 자주 찾는 식당으로 중식당인 도원과 일식당 고토부키가 꼽히지만 최근에는 양식당 토파즈도 유명해졌다. 이곳에선 2000년 박지원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으로부터 150억원의 양도성예금증서(CD)를 건네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거버너스 챔버의 김승택 지배인은 “정치적 사회적 격변기마다 그 중심에 선 당사자들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며 “어느 인사가 얼마나 자주 출입하는지 보면 권력의 흐름을 짐작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정재계의 유력인사들은 식사 모임 장소로 호텔이나 한식집 등 품위 있고 독립된 공간을 선호하는 편이지만 최근 들어 서민적인 식당을 찾는 경우도 많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해 6월 서울 시내 한 삼계탕집에서 재계 인사들과 식사를 하고 있다(위). 2002년 2월 민주당 의원들이 당시 주일대사로 부임하는 조세형 상임고문 환송 만찬에서 건배하고 있다(가운데). 주한미국상공회의소가 지난해 말 서울의 한 호텔에서 한국의 정재계 인사들을 초청해 창립 50주년 감사만찬을 열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 파워 피플의 저녁 식사

한국에서 유력 인사들이 찾는 식당이 밀집한 곳은 서울 여의도와 광화문, 시청 일대다. 권력이 있는 곳이기도 하고 권력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여의도에는 국회의사당이 있고 광화문과 시청 일대에는 청와대와 정부 청사, 주요 그룹들이 자리 잡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 관계의 본격적인 시작은 식사다. 올해 초 미국 뉴욕 타임스는 ‘파워 런치’라는 제목으로 유명 인사들이 열린 공간에서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는 뉴욕 식당가의 점심 모습을 전했다.

한국 사회의 식사 문화는 미국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격식을 갖춰 중요한 손님을 모시려면 점심보다는 저녁이다. 특히 업무상 중요한 자리는 남의 눈에 띄지 않는 은밀한 곳이 선호된다. 얼굴이 알려진 유명 인사들은 ‘누가 누구를 만나더라’는 식의 성가신 소문에 오르내리는 게 싫어 별실이 있는 식당을 찾는다.

프라자호텔 중식당 도원은 76년 오픈 당시 별실이 3개뿐이어서 이를 차지하려는 경쟁이 치열했다고 한다. 장관이나 그룹 총수라도 예약이 늦어 홀에서 식사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단골이었던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도 홀의 테이블을 배정받는 경우가 많았는데 호텔측에선 테이블에 병풍을 둘러주는 특별 서비스를 하기도 했다.

회원권이 1000만원이 훌쩍 넘는 63빌딩의 거버너스 챔버는 아예 홀이 없고 별실만 있다. 같은 63빌딩의 중식당 백리향은 지난해 리노베이션을 하면서 홀 면적을 줄이는 대신 별실의 수를 늘렸다. 이 두 식당은 카펫이 깔린 어두컴컴한 복도에 별실의 출입문이 줄줄이 있다. 오다가다 복도에서 만나지 않으면 누가 식사를 하러 왔는지 알 수 없다.

정찬용 대통령인사수석비서관은 “업무가 업무인지라 열린 장소에서 식사를 하게 되면 누구와 만나는지 알려져 곤란하고 주위도 산만해지기 때문에 독립된 공간을 찾는다”고 말했다.

기업인들도 중요한 미팅은 별실에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재계 총수들은 중요한 미팅이 있을 때 아예 호텔의 룸으로 식사를 주문하는 경우가 많다.

영국 런던, 미국 베벌리힐스, 뉴욕에 이어 최근 서울 강남에 문을 연 미스터 차우는 별실이 아니라 홀 중심의 식당이다. 다닥다닥 붙은 2인용 테이블이 많은 게 특징인데 바로 뉴욕 레스토랑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곳에선 L그룹 K회장과 S그룹의 K회장도 홀에서 식사를 하는 모습이 종종 목격된다. 박준석 본부장은 “외국계 기업이나 서구화된 스타일을 선호하는 재계 인사들이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미스터 차우 같은 곳에서도 비즈니스 미팅이 있지만 별실 모임과는 성격이 다르다. 박 본부장은 “계약 성사를 축하하는 파티처럼 부담이 적은 모임이 대부분”이라고 귀띔했다.

○ 높은 분들을 모시려면

유력 인사들이 드나드는 식당의 직원들은 세상 돌아가는 흐름을 줄줄이 꿰고 있어야 한다. 지배인 정도 되면 종합지와 경제지, 시사 잡지 등을 몇 가지씩 구독한다. 특히 단골 고객과 관련된 내용은 더욱 꼼꼼히 챙긴다.

직원들은 신문에 인사 기사가 나오면 모두가 돌려 보고 이름과 직함, 얼굴을 외운다. 동정란을 유심히 보면서 단골 고객이 외국에 출장을 다녀왔는지, 고객이 속한 조직이 상이라도 탔는지 살피는 것도 필수적이다. 장관이나 국회의원의 명단을 코팅해서 직원 게시판에 붙여놓은 식당도 있다.

서울 여의도의 회원제 클럽인 서울시티클럽 박혜서 영업본부장은 “사진을 복사해 회원들의 얼굴을 직원들에게 숙지시킨다”며 “고객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느낌을 주면서도 부담스럽지 않게 서비스하는 게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이 클럽에서 피트니스센터와 식당을 모두 이용할 수 있는 풀 멤버십 회원은 500명 정도다.

거버너스 챔버의 직원들은 3개월에 한번 논술형 시험을 본다. 식당이 문을 닫는 클로징 타임(오후3∼5시)을 이용해 VIP 고객 100명 가운데 20여명의 이름을 무작위로 불러준 뒤 취향과 기호, 흡연 여부, 좋아하는 메뉴를 아는 대로 쓰라고 한다.

이들 100명에 대해선 A부터 Z까지 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게 식당의 방침이다. 시험 성적이 나쁘면 점수가 올라갈 때까지 재시험을 봐야 한다.

고객에 대한 정보를 꿰고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워낙 힘 있는 인사들이 드나들기 때문에 예약전화를 받는 일도, 자리 배치를 하는 일도 쉽지 않다.

프라자호텔 중식당 도원의 이흥균 부지배인은 “예약이 매출을 좌우하기 때문에 3년 이상 근무한 직원만이 예약 전화를 받을 수 있다”고 소개했다. 직원들이 단골 고객 목소리만 들어도 누가 전화했는지 파악하도록 교육한다. 전화번호 국번을 보고 청와대 인사인지, 행정부 관료인지, 정치인인지 알 수 있도록 훈련한다.

방을 배치하는 것은 더욱 까다롭다. 누구에게 어떤 방을 주느냐는 무척이나 민감한 문제다. 자칫 잘못했다가 자존심을 건드리면 매출에 직격탄을 맞게 된다.

식당에선 예약 전화와 동시에 방이 배정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아침마다 당일 예약 고객들의 지위와 성향에 따라 방을 배치하게 된다.

예컨대 출입할 때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고 싶어하지 않을 것 같은 고객은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방을 준다. 정당이 다르거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람들끼리 왔을 때는 서로 마주치지 않도록 멀리 떨어진 방을 배정한다. 같은 회사의 사장과 전무가 같은 시간에 예약했을 경우에는 전무에게 사장도 예약했다는 사실을 넌지시 알려준다.

철저한 보안 유지는 기본에 가깝다. 백리향은 6개월에 한 번씩 식당 내에 도청장치가 있는지 점검한다. 거버너스챔버는 아예 도청추적 장치를 구입해 직원들이 수시로 검사한다. 아주 중요한 모임이 있을 때는 고객 쪽 수행원들이 직접 나서서 점검하는 경우도 있다.

내부 직원을 통한 ‘누수’를 단속하는 것도 중요하다. 음식을 나르는 직원들은 보아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해야 하며 별실 문을 나서는 순간 벙어리가 되어야 한다. 손님에게 다른 방에 누가 와 있는지 알려주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많고 고객들이 신경을 쓰기 때문에 별실에는 적어도 5, 6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베테랑 직원이 배치된다. 일부 단골 고객에게는 전담 서비스맨이 따라 붙기도 한다.

58년부터 영업을 해 한정식계의 대모로 불리는 향원의 주정순씨(83)가 “손님의 술버릇이나 좋아하는 음식조차도 평생 비밀로 해야 한다”는 철학으로 종업원들을 단속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주씨는 워낙 입단속을 철저하게 시켜 단골들에게 ‘MP(헌병)’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 달라지는 저녁 문화

고급 식당과 호텔이 중심이었던 유력 인사들의 저녁 식사 문화는 참여정부 들어 많이 달라졌다. 대체로 보면 싸고 가벼운 쪽으로 변하고 있는데 정치자금법이 개정되고 접대비 한도가 생기면서 돈이 빠듯해진 게 가장 큰 이유다.

여의도 정가에서는 초선 의원은 물론이고 자금 사정이 좀 나은 중진 의원들도 고급 식당 출입을 삼가는 경향이 뚜렷하다.

박희태 국회부의장(한나라당·5선)은 “정치 자금을 모으는 게 어려워지고 또 쓰는 것도 힘들어지면서 예전만큼 고급 식당에 자주 가지 않게 됐다”며 “주머니 사정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김문수 의원(한나라당·3선)처럼 외부의 식당 대신 국회 식당을 단골로 이용하는 의원도 많아지고 있다.

여의도 순복음교회 옆 중식당 외백의 백만인 지배인은 “의원들의 단체 회식이 거의 없어졌고 4명 정도가 모여 식사나 하러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그나마 저녁이 아니라 점심이 80% 정도로 많다”라고 말했다.

청와대 인사들도 고급 식당을 피하는 분위기다. 근처에 있는 삼계탕 전문점인 토속촌, 중저가 한정식집인 은아네, 설렁탕집 대송과 백송 등이 청와대 인사들이 주로 찾는 곳이다.

이해찬 총리도 식사는 대부분 총리공관에서 한다. 지은희 여성부 장관이 사람을 초대하는 곳은 청사 내 국무위원 식당이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기자 시절부터 노량진 수산시장 부근의 여수식당에서 식사를 자주 한다.

재계 인사들 역시 무조건 고급 식당을 찾는 것만은 아니다. 두 달에 한 번씩 한국을 찾는 신격호 롯데 회장은 공항에서 오는 대로 곧장 롯데호텔 지하의 베네치아로 직행해 스파게티를 한 접시 먹었다고 한다. 삼성테스코 이승한 대표는 업무상 중요한 약속이 아니면 회사 근처 옥주식당이나 청국장 집을 즐겨 찾는다.

이런 저런 이유로 고급 식당들의 명성은 예전 같지 않다. 여의도 식당가는 DJ 정권 당시보다 매출이 20∼30% 줄었다고 한다. 청와대 인근 한정식집 주인들도 청와대 손님이 거의 끊긴 데 대해 공공연히 불만 섞인 목소리를 털어놓는다.

회원제 클럽으로 철저하게 폐쇄적으로 운영됐던 서울시티클럽은 최근 제한적이나마 일반인 손님을 받기로 방침을 바꿨다. 박혜서 영업본부장은 “일반인 때문에 소란스럽다며 기존 회원들이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지만 영업이 잘돼야 멤버십도 더 잘 운영되는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유력 인사들이 자주 가는 음식점
한식
상호
주소
전화번호(02)
두레
종로구 인사동 8
732-2919
두마
종로구 내수동 110
730-1016
들뫼바다
여의도동 14의1
6333-8500
마루터(퓨전한식)
청담동 99
548-9081
민속관
서초1동 1637의5번지 다라빌딩 지하1층
585-0080
버드나무집
서초동 1340
3473-4167
서정
종로구 관훈동 92
735-8811
수라
종로구 인사동 141
730-2626
신한국관
여의도 잠사회관 지하1층
782-1125
양마니
여의도 맨하탄호텔 별관
784-9282
용수산
중구 무교동 파이낸스센터 지하1층
771-5553
웅전
마포구 아현동 434의11
723-9789
유가원
여의도동 17의1 금산빌딩 지하1층
3775-2838
유선
종로구 적선동 94
736-3322
은하수
여의도 삼보호정빌딩 지하1층
780-8550
제주어가
강서구 내발산동 645
3661-2999
진복
여의도 백상빌딩 2층
761-0683
진주집
여의도 백상빌딩
761-6688
진주청국장
여의도 신용평가사옥 지하1층
785-6918
토담골
강남구 청담동 유림빌딩 지하1층
548-5114
한뫼촌
종로구 재동 46
766-5535
향정
종로구 관훈동 166
738-5006
혜원
종로구 통인동 133
738-0818

일식
거해여의도 프린스텔 2층783-1616
나리타 강남구 대치동 950의1566-6123
동해도여의도 안원빌딩 지하1층761-6300
미야꼬태평로 삼성생명 빌딩 지하1층751-3200
미유끼서초구 서초3동 보광빌딩 지하1층532-3399
소도여의도 서린빌딩783-3155
오미찌여의도 삼희익스콘벤처타워 지하1층786-1472
하나조노리츠칼튼호텔 3층3451-8276
하코네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 1층559-7623
종로구 수송동 원당빌딩 1층737-2130

중식
바인롯데호텔 신관1층317-7151
시즌스밀레니엄서울힐튼 1층317-3060
안나비니강남구 청담동 89의163444-1275
파리스그릴그랜드하얏트서울 지하1층799-8161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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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스밀레니엄서울힐튼 1층317-3060
안나비니강남구 청담동 89의163444-1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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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곽민영기자 havefun@donga.com

홍석민기자 smhong@donga.com

사진=강병기기자 arch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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