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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8월 20일 17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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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살 외아들을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저 세상에 보낸 아내는 이후 중증치매에 걸린다. 아들 성인식 날 남편과 함께 무덤을 찾아갔다가 집에 돌아온 아내는 난데없이 “깜빡 잊고 묘지에 다녀오지 않았다”며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집어 던지며 울부짖는다. 급기야 “죽여 달라”고 애원한다. 남편의 두 손을 자기 목에 갖다 대고 엉엉 우는 아내 앞에서 속수무책이던 남편은 아내가 너무 가여워진다. 순간 남편은 아내의 목을 졸라 죽이고 만다.
남편의 이름은 가지 소이치로. 직업은 신망이 두터운 경찰관. 현직 경찰관이 아내를 죽였다는 것이 알려지자 사회는 벌집 쑤신 듯 들썩인다. 그런데 가지 경감의 행동에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 하나 있다. 아내를 죽이고 이틀 밤이 지난 뒤에야 경찰에 출두한 것. 그러고는 이틀의 행적에 대해 입을 다물어 버린다. 책 제목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사무라이 정신에서 비롯한 ‘자살 문화’라는 게 존재하는 일본 사회는 아내를 죽여 놓고 함께 따라 죽지는 못할망정 이틀 동안이나 ‘딴 짓’을 한 남편에게 그 ‘딴 짓’의 내용을 추궁한다. 결국 소설 말미에 가지 경감의 ‘사라진 이틀’의 행적이 밝혀지지만 주인공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수사관, 기자, 법관, 교도관들의 행동은 권력 앞에서 이중적인 또 다른 인간의 모습들이다.
어떻든 사건은 극적인 반전을 이룬다. 살인자로 낙인찍힌 가지 경감은 사실, 다른 생명을 살린 휴머니스트였던 것이다. 가지 경감은 ‘사라진 이틀’ 동안 아들뻘의 한 남자를 만났다. 그 청년은 몇 년 전 가지 경감의 골수 기증으로 새 삶을 살고 있었던 청년이었다. 아들이 백혈병에 걸렸을 때 골수 기증자가 없어 아들을 잃게 된 경감은 자신의 아들처럼 백혈병을 앓는 아이에게 골수를 기증했던 것이다.
아내와의 일이 있기 몇 달 전, 신문에서 청년의 근황을 알게 된 그는 아내를 죽이고 자수함으로써 세상과의 인연을 끊으려는 순간, 아들을 만나듯 그 청년의 얼굴을 보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청년이 나중에 살인자인 자신으로부터 골수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괴로워할까봐 침묵한 것이었다.
이 책은 지난해 일본에서 발간돼 50만부가 팔렸다. 아내 살인이라는 극단적 상황에서 펼쳐지는 타인에 대한 또 다른 극한적인 사랑이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박진감 있는 전개와 다양한 복선이 추리소설처럼 흡인력을 갖는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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