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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놀이와 예술’]<10>마술환등놀이, 라테르나 마기카

입력 2004-08-16 18:04업데이트 2009-10-09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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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을 광원으로…
①독일의 과학자이자 예수교 수도사였던 아타나지우스 키르허가 자신의 저서 ‘빛과 어둠의 위대한 예술’에서 선보인 라테르나 마기카. 등불을 광원으로 사용하고 연기를 빼기 위해 굴뚝을 장착한 점, 그리고 지옥의 유황불에서 고통받는 영상을 만들어낸 점 등이 흥미를 끈다.-사진제공 진중권
어린시절 환등기가 무척 갖고 싶었다. 무려 한 달 동안 용돈을 모아 소년잡지 광고에서 본 조립식 환등기를 주문했다. 물건은 알량하기 짝이 없었다. 렌즈 하나, 널빤지 몇 장, 소켓과 플러그, 편집하다가 잘라버린 것으로 보이는 필름 몇 장. 렌즈를 달고, 소켓을 부착하고, 널빤지들을 아교로 이어 붙여 대충 환등기의 꼴을 만든다. 그리고 전원을 올리니, 와우, 정말로 벽에 희미한 이미지가 나타난다. 얼마나 신기한가?

신기함도 일상이 되면 시시해지는 걸까? 어린시절 환등기에 매료됐던 나 자신도 지금은 미술사 강의에 슬라이드를 사용하며 거기서 아무런 신기함도 못 느낀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한때는 대단한 충격의 대상이었던 적이 있다. 가령 옛 사람들은 ‘환등기’를 ‘마법의 등’(라테르나 마기카)이라고 불렀다. 어둠 속에서 불쑥 이미지를 나타내는 이 기술이 그야말로 ‘마법’으로 보였던 것이다.

● 마법의 등, 라테르나 마기카

‘라테르나 마기카’는 정확히 ‘카메라 옵스쿠라’를 뒤집어 놓은 것이다. 렌즈를 통과한 이미지가 180도로 물구나무서는 것은 마찬가지. 차이는 광원(光源)을 어디에 두느냐에 있다. 카메라 옵스쿠라는 광원이 기계의 바깥에 있고, 라테르나 마기카에서는 그것이 기계의 안쪽에 있다. 카메라 옵스쿠라가 밖의 영상을 안으로 끌어들인다면, 라테르나 마기카는 안의 영상을 밖으로 내던진다.

이동식도 있어요
②움직이는 그림 효과를 내기 위해 고안된 에티엔 가스파르 로베르송의 이동식 라테르나 마기카.

이렇게 이미지를 투사(projection)하는 게 라테르나 마기카의 본질이다. 이미 동양에서는 오래 전부터 청동거울의 뒷면을 반사시키면 거기에 새겨진 이미지가 벽면에 투사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서양에서는 이 원리가 비교적 늦게 발견됐던 것이다. 이미지 투사의 원리를 가장 먼저 발견한 이는 이탈리아의 저술가 지암바티스타 포르타(1538∼1615년)로 추정된다. 그는 자연광과 반사경을 이용해 유리 플레이트에 쓴 글자들을 벽면에 투사하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포르타가 발견한 원리를 더 발전시킨 이는 독일의 수학자이자 과학자이며, 예수교 수도승이었던 아타나지우스 키르허(1602∼1680년)였다. 1646년에 발간된 저서 ‘빛과 어둠의 위대한 예술’에서 그는 새로운 형태의 라테르나 마기카를 소개한다. 그가 설계한 것은 내부에 등불을 달고, 더 선명한 이미지를 투사하게끔 집광(集光) 렌즈를 장착한 것이었다. 연기를 빼기 위해 굴뚝을 낸 것이 인상적이다.

키르허가 남긴 그림①을 보자. 한 사내가 지옥의 유황불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 오늘날 우리 눈에는 장난처럼 보이겠지만, 당시 저런 영상을 처음 접한 사람들은 그 생생함에 경악했다고 한다. 말로 듣는 지옥의 설교보다 영상으로 눈앞에 펼쳐지는 지옥의 풍경 중 어느 쪽이 더 효과가 있겠는가? 영상이 가진 이 생생한 효과 때문에 라테르나 마기카는 종교적, 도덕적 교육을 위한 훌륭한 교재로서 성직자나 설교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고 한다.

원리는 뭘까
③1794년에 발간된 유럽의 한 백과사전에 소개된 마술환등극의 원리. 환등기의 투사효과와 거울의 반사효과, 그리고 연기를 결합해 허공에 투사하는 방법이 설명돼 있다.

● 움직이는 그림의 선구자

라테르나 마기카의 역사에서 기억해야 할 또 한 사람은 네델란드의 물리학자 크리스찬 후이겐스(1629∼1695년)다. 키르허와 더불어 이 장치의 발명자 중의 하나로 추정되는 이 물리학자는 라테르나 마기카의 정지된 영상에 처음으로 움직임을 도입했다. 10장의 스케치를 연속적으로 투사함으로써 해골이 제 팔로 제 머리를 떼었다가 붙이는 장면을 연출한 것이다.

우리야 온갖 동영상에 익숙하지만, 옛 사람들은 그림이 움직인다는 사실 자체를 충격으로 받아들인 모양이다. 가령 뤼미에르 형제가 최초로 활동사진을 영사했을 때, 관객들은 눈앞으로 육박하는 기차에 놀라 비명을 질렀다. 그 100여 년 전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벨기에인 에티엔 가스파르 로베르송(1763∼1837)은 이동식 라테르나 마기카(그림②)로 그림이 움직이는 쇼크 효과를 냈다. 당시의 관객들은 이 간단한 트릭에도 놀라 비명을 질렀다고 한다.

환영에 놀란 관객
④에티엔 가스파르 로베르송의 저서 ‘과학적·일화적 기억’(1831년) 속에 마술환등극의 한 장면을 그린 삽화. 놀란 관객들이 비명을 지르거나 바닥에 엎드리는 모습에서 오늘날 공포영화의 원형을 발견할 수 있다.

영상은 오직 벽에만 투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영상을 흐늘거리는 연기 위에 투사하면?마치 물에 뜬 해파리처럼 허공에서 흐늘거리는 영상이 나타날 것이다. 그 입체 영상이 악마의 형상을 하고 있다면? 그림④를 보자. 어두운 공간에 악마의 영상이 나타나자 관객들이 놀라 비명을 지른다. 한 사내는 머리를 감싼 채 바닥에 엎드렸고, 다른 사내들은 지팡이로 악마를 쫓아내고 있다. 옛날의 기계라고 우습게 볼 게 아니다. 라테르나 마기카로 이렇게 홀로그램의 효과를 낼 수도 있었다.

● 3차원 효과까지 가능했던 마술환등

1794년에 발간된 어느 백과사전에 수록된 삽화는 영상을 연기에 투사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피어오르는 연기 위에 수도복을 입은 한 여인이 나타난다. 영화 ‘스타워즈’의 한 장면, 즉 R2D2라는 로봇이 루크 스카이워커의 발 앞에 구조를 요청하는 레이아 공주의 홀로그램을 토해놓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그림③에서 볼 수 있듯이, 여기에 거울의 반사효과를 결합하면 또 다른 표현의 가능성이 생긴다. 1800년경 유럽에서는 이를 이용한 ‘마술환등(phantasmagorie)’이 유행했다.

진짜같은 무대위 유령
⑤환등기의 투사효과와 거울의 반사효과를 결합해 유령을 등장시킨 1800년경 마술환등극의 한 장면.

마지막 그림⑤를 보자. 마술환등극의 현장이다. 무대 위에서 한 배우가 칼을 휘둘러 필사적으로 유령과 결투를 벌이고 있다. 하지만 이 유령은 거울의 반사효과와 환등기의 투사효과를 결합해 무대 위에 올려놓은 허깨비일 뿐이다. 이런 것으로 보아 당시 마술환등의 기술이 고도의 발전수준에 도달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이 당시에 연출했던 환영(幻影)효과는 오늘날의 사람들까지도 놀라게 할 정도라고 한다.

현대 사회는 키르허가 “빛과 어둠의 위대한 예술”이라 부른 것의 산물이다. 영상매체 없는 현대를 생각할 수 있을까? 오늘날 유행하는 ‘미디어 예술’도 실은 이 과거의 예술을 이용한 것이다. 재작년이던가? 어느 전시회에 갔다가 재미있는 작품을 보았다. 라테르나 마기카의 원리를 이용한 설치예술이었다. 물방울에 비친 사람의 영상을 렌즈를 이용해 스크린에 크게 투사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작가는 이미 17세기에 누군가 자기와 똑같은 작품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평론가·중앙대 겸임교수

▼진중권의 ‘놀이와 예술’ 11회는 ‘인형과 로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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