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질투는 수컷들의 힘… 블랙코미디 ‘아트’ 19일 개막

  • 입력 2004년 8월 9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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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남자가 있다. 잘 나가는 의사인 수현, 지방대 교수인 규태, 문방구 사장인 덕수는 20년 지기. 이들의 관계가 억대의 그림 한 점으로 인해 삐걱거린다. 수현이 사들인 텅 빈 캔버스 같은 그림을 보고 규태는 속물근성을 비웃으며 대립각을 세우고 덕수는 둘 사이를 줏대 없이 오간다. 과연 세 친구는 우정을 회복할 수 있을까.

19일 서울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막이 오르는 연극 ‘아트’(Art·제작 악어컴퍼니)는 소심한 수컷들의 의리, 그 치사한 속내를 속속들이 파헤친 블랙 코미디다. 프랑스 여성작가(야스미나 레자)가 썼지만 연출가 황재헌씨의 공들인 번안으로 번역극이란 이물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 실정에 맞춰 번안한 젊은 연출가 황재헌씨의 공이 크지만 기본적으로 ‘동양이나 서양이나 남자들의 속성은 똑같다’는 결론도 가능하다.

이 연극에선 두 팀이 번갈아 무대에 선다. TV와 영화, 연극을 넘나드는 정보석 권해효씨, 연극계에서 늘 캐스팅 1순위로 꼽히는 이남희 이대연씨, 짱짱한 실력파인 유연수 조희봉씨 등 6명이 각각 화목토, 수금일팀으로 나뉘어 공연한다. 격일로 진행되는 두 팀의 연습을 지켜본 소감은 ‘같은 대본, 같은 역할이라도 배우가 다르면 다 다르다’는 것. 서로 비교를 거부하는 두 팀의 연습현장을 찾아갔다.

● D-16, 권해효-조희봉-이대연 수금일팀을 만나다


돈 많고 쿨한 수현, 독선적인 규태, 만만하면서도 착한 덕수, 세 남자의 우정 뒤에 숨은 질투를 들춰낸 연극 ‘아트’. 두 팀으로 나뉘어 출연하는 여섯 남자들은 “누구나 규태처럼 살지만 수현을 꿈꾸며 스스로는 덕수라고 생각한다”는 권해효씨의 분석에 공감했다. 왼쪽부터 수금일팀의 조희봉, 권해효, 이대연씨(왼쪽). 화목토팀의 이남희 정보석 유연수씨(오른쪽).- 사진제공 악어컴퍼니


3일 서울 명륜동 모 고시원의 지하연습장. 권해효(규태) 조희봉(수현) 이대연씨(덕수)는 화목토요일에 모여 연습을 한다. 평균연령 39세의 ‘연소자팀(?)’ 세 배우는 작품에 대한 집중력이 돋보였다. 연출자와 배우들은 논리적 토론으로 문제점을 짚어본 뒤 물 흐르듯 연습을 이어갔다. 휴식시간. 잠시 탁구를 친 뒤 이들은 다시 작품에 몰두했다.

“여성작가라 그런지 아무리 남자들이 잘난 척해도 ‘니들의 치졸함은 이 수준이야’ 라고 조소하는 것 같지 않냐. 10년 전만 해도 못 느꼈는데 솔직히 동창이나 친구 사이에도 계급이 생기는 것 같아. 수현이 경제력을 바탕으로 리더가 되면서 규태는 상실감, 반감을 가지잖아. 겉으로 아닌 척해도 남자들에겐 엄청난 질투가 있지.” (권해효)

“가진 것, 배운 것은 없지만 덕수는 ‘나 없인 너희들 물이야’라고 생각하지. 만만한 듯 보여도 우정을 유지시켜주는 친구야.” (이대연)

“세 명 다 빈 곳이 있지. 학교 다닐 때 수현이 규태 하자는 대로 따랐다면 이제는 돈 많은 이혼남의 보상심리와 콤플렉스 때문에 관계가 달라지는 거지.” (조희봉)

● D-15, 정보석-이남희-유연수 화목토팀을 만나다

4일 같은 연습장. 평균연령 42세의 ‘연장자팀’(?)인 정보석(규태) 이남희(수현) 유연수씨(덕수)는 오후 6시가 되자 ‘밥 먹고 합시다’라고 합창했다. 길 건너 밥집에서 세 사람이 고른 메뉴는 김치찌개, 오징어덮밥, 두부찌개. 식성은 달랐지만 세 배우는 찰떡궁합, 끈끈한 우정으로 연습에서도 여유 있는 감성의 작품을 만들어갔다.

이 팀이 매일 술 마시고 단합하는 그 팀이냐고 묻자 정씨가 정색을 했다. “누가 그래요. 매일 안 마셔요. 격일로 연습하거든요.(웃음) 우린 이름도 그렇고 관객과 더불어 화목하기만 하면 돼죠, 뭐(웃음).” (정보석)

정, 이씨는 동갑내기. 이씨는 “딱 세 번 만나고 친구 되자고 했다. 친구가 되기 위해 만난 작품 같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유연수씨는 “형들이랑 외모로만 동갑”이라고 소개했다.

“11년만에 연극에 출연하는데 처음엔 두 사람의 연기를 보고 주눅 들었어. 신나게 배우고 가야지.” (정보석)

“여자들만 하는 줄 알았던 시시콜콜한 얘기를 남자들이 하니까 쑥스럽고 좀 찔리기도 하네.” (이남희)

● 우리 안에 셋이 다 있다

자기 의견을 정의(正義)라고 강요하는 독선적인 규태, 피해도 안주고 손해도 안보는 쿨한 수현, 소금 같은 친구인 착한 덕수. 한 사람 안에 세 가지 성향이 다 있음을 일깨워주는 것도 이 연극의 매력이다.

“결국 이 작품은 관객들이 소주 한잔 마시면서 ‘우리는 어떤가’라고 이야기할 때 완성되는 것 같아요.”(권해효)

10월3일까지 화∼금 8시 토 4시반 8시 일 공휴일 3시 6시 학전블루소극장. 2만∼3만원. 02-764-8760

고미석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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