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카지노’…10國 10色 짜릿한 ‘카지노 순례’

  • 입력 2004년 8월 6일 17시 13분


‘철도원’의 작가 아사다 지로(왼쪽)가 오스트리아 빈 교외에 있는 바덴 카지노에서 룰렛 게임을 즐기고 있다. 사진제공 이레
‘철도원’의 작가 아사다 지로(왼쪽)가 오스트리아 빈 교외에 있는 바덴 카지노에서 룰렛 게임을 즐기고 있다. 사진제공 이레
◇카지노/아사다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340쪽 1만2000원 이레

19세기 초 어느 날 영국 런던의 가난한 생선장수 윌리엄 크락포드는 팔지 못한 생선을 담은 자루를 어깨에 메고 길거리에 서 있었다. 그때 마차가 서더니 한 귀부인이 금화와 은화, 동전을 쏟아 부었다. 당시 유행하던 귀족들의 자선행위였다. 그의 발밑으로 굴러온 금화 한 개.

그는 이 돈을 장사 밑천으로 삼지 않았다. 근처 경마장으로 달려가 가장 인기 없는 말에게 금화를 걸었다. 그에겐 처음이자 마지막인 도박이었다. 얼마 뒤 경마장은 난리가 났다. 그가 손에 쥔 배당금은 인도로 갈 수 있는 선박을 살 수 있을 정도의 거액이었다.

그는 여기서 또 한 번 변신한다. 버클리스퀘어 앞에 있는 대저택을 사서 런던 최초의 카지노를 열었다. 현재 하룻밤에 50만파운드(약 10억원)를 걸어야 게임을 할 수 있는 카지노 크락포드는 이렇게 시작됐다.

이 책은 ‘철도원’의 작가 아사다 지로가 유럽에서 유서 깊은 고급 카지노를 돌며 쓴 기행문이다. ‘소설을 쓰는 갬블러’로 자신을 지칭한 그는 한때 경마에 흠뻑 빠졌던 도박광.

그는 도박교(敎)의 신도가 돼 유럽 카지노의 본산인 모나코의 ‘그랑 카지노’를 시작으로 프랑스의 니스 칸 노르망디, 이탈리아의 산레모, 오스트리아의 바덴과 제펠트, 런던, 독일 비스바덴 바덴바덴의 카지노를 순례했다.

유럽 카지노는 정장을 입어야 입장이 허락된다. 일본의 빠찡꼬장이나 미국 라스베이거스처럼 아무나 즐기는 오락이 아니라 돈과 품위를 함께 가져야 누릴 수 있는 호사취미인 것.

저자는 각 카지노에 전해오는 일화를 풍성하게 전해준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독일의 카지노를 전전하다가 비스바덴 카지노에서 알거지가 된 뒤 노름빚을 갚기 위해 소설 ‘노름꾼’을 썼다든가 프랑스 파리 대사 시절 카지노에서 큰돈을 잃었던 비스마르크가 프로이센 재상이 되자마자 카지노를 금지시켰다는 얘기 등.

카지노에서는 나라별 특성이나 민족성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룰렛

형식을 중요시하는 영국의 카지노는 입장 24시간 전에 회원 신청을 한 뒤 가입이 허락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 회원 심사를 하는 것도 아닌데 회원제라는 형식을 지키는 것. 독일의 카지노에는 도박하는 사람만큼이나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하루 종일 룰렛에서 나오는 색깔과 숫자를 계산하며 확률을 따진 뒤 확신이 생겼을 때에야 게임을 시작한다. 독일인들은 게임 자체보다 분석하고 판단하는 과정을 즐기는 것이다.

저자는 카지노를 단순한 도박장이 아니라 19세기 초 유럽에서 태동한 문화공간이자 어른들의 진정한 놀이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일본 독자들을 향해 ‘노동은 미덕이고 놀이는 죄악’이라는 중세적 가치관에서 벗어나 카지노에서 인생의 행복을 즐기라고 강요하듯 권한다.

책 곳곳에서 일상에서의 탈출, 비일상과 비상식의 세계, 이 세상이 아닌 신비한 곳 운운하며 카지노 예찬론을 펴는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결국 이 한마디에 집약되는 것 같다.

“세상 사람들이여, 열심히 놀아라.”

그러나 이 책에서 소개되는 카지노가 일반인들은 범접하기 힘들 정도로 고급스럽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마디를 덧붙여야 하지 않을까. ‘돈 많은 사람들에 한해.’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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