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신문 문건’ 실무자 개인이 한 일이라지만…

  • 입력 2004년 8월 2일 18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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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가 다시 시비에 휩싸였다. 신문 고시(告示) 분야를 담당하는 박모 사무관이 열린우리당의 언론특위 간사인 문학진(文學振) 의원의 보좌관에게 ‘신문 관련 문건’을 제공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파문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무원이 신문 논조나 경영 분석 등 업무와 관련 없는 미묘한 내용을 여당 보좌관에게 제공한 것은 정치적 중립을 위반한 것은 물론 행정부가 집권 여당의 ‘시녀’로 전락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크다.

야당은 이번 문건 파문을 ‘신(新)언론공작’으로 규정하고 철저한 진상조사를 촉구하고 있어 2001년 언론사 표적조사 시비로 곤욕을 치렀던 공정위는 3년 만에 다시 부처 이미지에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논란=‘참고자료’라는 표지를 포함해 총 55페이지 분량으로 작성된 이번 문건을 살펴보면 공정위가 신문시장 관련 정책을 집행하면서 정치적 고려를 하고 있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게 하고 있다.

우선 문건에는 ‘신문시장 정상화 대책’뿐 아니라 각 신문의 논조 분석과 동아 조선 중앙일보 등 3대 메이저 신문의 수익성 분석 등 미묘한 내용이 모두 담겨 있다.

또 신문지국 조사에 이은 본사 조사 시기에 대해 “9월에 추진할 경우 지국에 대한 과징금 부과에 이어 곧바로 본사 조사에 착수하면 반발이 예상되므로 사전준비를 한 뒤 11월에 착수하는 것이 좋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그동안 신문 고시를 통해 신문 유통질서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할 뿐 다른 의도가 없다고 강조해 온 공정위의 주장을 무색케 하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문건 작성자인 박 사무관은 “신문시장 정책을 담당하는 주무 사무관으로서 신문과 관련된 정보를 수집해 정리해 왔는데 문 의원 보좌관이 자료를 요청해 넘겨준 것”이라고 말했다.

▽나사 풀린 공정위=이번 문건이 공개된 뒤의 반응을 종합하면 이번 문건 작성 및 제공에 공정위가 조직적으로 개입했을 가능성은 일단 낮아 보인다.

공정위는 이날 공식 해명자료를 통해 “문제의 신문담당 실무자가 개인적 업무 참고자료로 정리한 문건으로 사전에 공식적으로 내부에서 논의되거나 보고된 적이 없다”며 “문 의원실에서 다양한 자료를 비공식적으로 요구해 와 담당자가 사적으로 보좌관에게 e메일로 송부한 것”이라고 거듭 밝혔다.

박 사무관도 비슷한 해명과 함께 “과장 등 윗사람에게 보고한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공정위 및 박 사무관의 해명을 그대로 믿더라도 의문은 남는다.

일반적으로 정부 부처가 국회의원에게 제공하는 자료는 최소한 담당 과장, 필요할 경우에는 국장급 이상의 결재를 받는다. 하지만 이번 경우엔 과장도 모르는 사이에 매우 민감한 사안이 사무관과 의원 보좌관 사이에 오고 갔다는 것이다.

한 경제부처 공무원은 “만약 공정위 해명이 사실이라면 조직의 위계질서와 보고체계가 형편없이 무너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공정위 신문정책 공정성 유지될까=정부 부처의 정책 기획과 입안은 사무관에게서 시작된다. 물론 과장-국장 등 결재라인을 밟으면서 손질이 되기는 하지만 사무관이 만든 정책의 골격은 대부분 유지된다.

공정위의 신문시장정책을 담당하는 주무 사무관이 정책을 입안하는 과정에서 문건에 나타난 정치적인 고려가 개입된다면 공정한 정책 집행이 힘들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공정위 고위 당국자는 “이 같은 지적의 타당성을 인정한다”며 “박 사무관에 대해서는 적절한 조치가 취해질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편 한나라당 배용수(裵庸壽) 수석부대변인은 이번 파문과 관련해 논평을 내고 “공정위가 기획하고 있는 ‘신종언론공작’의 실체가 드러난 것”이라고 비판했다.

배 부대변인은 “공정위가 업무와 전혀 관계없는 정치적 보고서를 만들어 열린우리당에 제공한 것은 국가기관이 여권 편들기에 나선 것도 모자라 아예 발 벗고 ‘신문시장 개혁’을 주도하려는 것”이라며 진상조사를 촉구했다.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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