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윤정국/한국에서 세계 일류 되기

  • 입력 2004년 5월 26일 18시 44분


며칠 전 칸 영화제에서 영화 ‘올드보이’로 최우수작품상인 ‘황금종려상’ 다음의 2등상인 심사위원대상(Grand Prix)을 받은 박찬욱 감독은 이제 세계 영화계의 떠오르는 샛별이 됐다.

이번 칸 영화제에 몰아닥친 아시아영화 열풍의 중심에 그가 있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황금종려상’이 이라크전과 관련해 정치적 의미가 큰 미국 마이클 무어 감독의 ‘화씨 911’에 돌아간 것을 감안하면 박 감독이 왕자웨이, 에밀 쿠스트리차 등 세계적 감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영화제의 ‘사실상 주역’을 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칸이 2년 전 ‘취화선’의 임권택 감독에게 감독상을 주었을 때는 자신들이 잘 모르는 동양의 영화세계를 인정하고 이를 개척해온 거장의 공헌에 경의를 표하는 의미가 컸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칸에 처음 진출한 41세의 젊은 감독이 영광을 안은 것은 서양적 영화 제작기법과 스타일을 갖고 진검승부해 이뤄낸 개가라는 점에서 그때보다 더욱 뜻 깊은 일이다.

박 감독이 칸 현지에서 보여준 자신감 넘치는 태도도 수상에 한몫했다. 그는 외국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현지 공식기자회견에서 심사위원장인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킬 빌’에 대해 “불행히도 한국에서는 내 영화 ‘올드보이’와 동시에 개봉돼 참패했다”고 말해 폭소를 자아냈다. 현지 영화잡지는 이를 받아 ‘Oldboy killed Kill Bill in Korea’란 제목으로 보도해 ‘올드보이’의 이미지를 높여줬다는 후문이다.

영화뿐 아니라 클래식음악 분야에서도 2년 전 순수국내파 학생이 세계 메이저급 콩쿠르에서 1위를 해 음악계를 깜짝 놀라게 한 일이 있다. 어릴 때부터 외국 유명 음악학교로 유학 간 사람들과 달리 일반 중학교를 거쳐 한국예술종합학교(예종)에서 공부한 손열음양은 2002년 이탈리아 비오티 콩쿠르 피아노 부문에서 57명의 다른 쟁쟁한 참가자들을 물리치고 16세의 나이에 최연소 우승을 했다. 올 10월 내한 공연을 갖는 세계적 오케스트라 뉴욕 필의 협연자로도 예정돼 있는 손양은 한국 클래식음악계의 명실상부한 보배다.

박 감독과 손양의 성공은 국내 영화계와 클래식음악계가 어떻게 하면 세계일류를 키워낼 수 있는지 이제 방법을 터득하기 시작했음을 입증한다. 영화광이면서 서강대에서 철학을 전공했던 박 감독은 영화이론을 철저히 공부했고, 그 뒤 이를 바탕으로 개성 강한 자신의 세계를 대중적으로 풀어내는 노력에 심혈을 기울여왔다. 흥행과 작품성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는 충무로의 치열한 경쟁분위기가 작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손양의 성공은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다는 그의 천재성뿐 아니라 이를 일찍 발견하고 키워준 ‘예종 예비학교-예종’으로 이어지는 국내 음악 영재교육 체계가 잘 작동했기 때문이다. ‘평준화’보다는 ‘선택과 집중’ 교육으로 예술영재를 세계 일류로 키워낸 것이다.

박찬욱이든 손열음이든 한국에서 세계 일류가 되기는 쉽지 않다. 이들의 성공은 우리 문화 교육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시사하고 있는 건 아닐까.

윤정국 문화부장 jk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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