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년만에 형 ‘6·25전사’ 확인한 김석본씨

  • 입력 2004년 5월 13일 18시 39분


“수십년 동안 늘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는데 이제야 형님이 전사했다는 확신이 듭니다.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발굴됐더라면….”

6·25전쟁 때 전사한 큰형의 유해와 인식표가 발굴됐다는 소식에 셋째동생 김석본(金石本·65·대구 달서구 성당동)씨는 13일 “큰형이 동생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곤 하던 기억이 떠오른다”며 이같이 말했다.

육군 36사단은 12일 강원 홍천군 내면 방내리에서 6·25전쟁 전사자 유해를 발굴하다 김덕만(金德萬) 일병의 유해와 ‘1136804’라는 군번이 새겨진 스테인리스 인식표를 전사한 지 54년 만에 찾아냈다.

유해와 인식표가 함께 발견된 것은 지난달 30일 이만초 상병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

4남2녀의 장남으로 1928년생인 김 일병은 1950년 9월 입대해 9사단 소속으로 참전했다가 다음해 1월 19일 홍천지구 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석본씨는 “형님이 강원 홍천에서 숨졌다는 것은 이번에 알았다”며 “돌아가신 부모님이나 동생들은 모두 형이 지리산 공비토벌에 참가했다가 숨진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김 일병의 둘째동생 만수(萬壽·70)씨와 넷째동생 사만(四萬·58)씨도 대구에 살고 있고 여동생 2명은 서울과 경남 진주시에 각각 살고 있다.

석본씨는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큰아들을 그리며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고 회고했다. 어머니 길갑선(吉甲先)씨는 해마다 9월 9일(6·25전쟁 전사자 공식 기일)에 맞춰 아들의 제사를 지내오다 96년(당시 78세)에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 김봉조(金奉祚)씨는 35년 전 별세했다.

어머니는 생전에 “덕만이가 북한에 포로로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며 한 가닥 희망을 놓지 않았다고 석본씨는 전했다.

석본씨는 “전쟁 이듬해쯤 전사통지서와 함께 뼛가루가 고향(대구 달성군 화원읍) 집으로 왔지만 어머니는 ‘이게 덕만이 뼈인지 어떻게 아느냐’며 믿지 않았다”고 말했다.

당시 어려운 가정형편이었지만 어머니는 “덕만이는 우리 집 기둥”이라며 장남에 대한 애정이 각별해 중학교까지 공부를 시켰다는 것. 석본씨는 “어머니께서 들에 일을 하러 갈 때에도 큰형의 밥은 늘 따뜻하게 차려놓곤 하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형의 제사를 지내고 있는 그는 “형의 영결식을 마친 뒤 부모님 산소를 찾아뵐 생각”이라며 “수십년 세월 동안 늘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는데 늦게라도 형의 유골과 유품이 발견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석본씨는 14일 형제들과 함께 형의 유해가 발견된 홍천의 군부대를 찾을 예정이다.

대구=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홍천=최창순기자 cs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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