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왕오천축국전’…지명스님 등 6명 태평양횡단

  • 입력 2004년 5월 9일 18시 55분


“안일한 자세에서 벗어나 삶과 죽음을 몸으로 느끼며 수행하는 기회가 된 것 같습니다. 망망대해에서 엄청난 강풍과 높은 파도를 맞으며 생명의 위기를 느낀 순간 수행이 크게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일엽편주인 요트에 몸을 싣고 목숨을 건 태평양 횡단에 나섰던 전 법주사 주지 지명(之鳴·56) 스님 등 6명이 8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수영만 요트경기장에 무사히 도착했다. 64일 동안 바닷길 1만2800km를 항해했다.

지명 스님은 이날 가족 신도 등 500여명이 모인 환영식 자리에서 “조용히 수행에 정진해야할 중이 요란을 떨면서 여러분을 불편하게 해 죄송스럽다”면서 “이번 횡단에서 깨달은 점을 바탕으로 구체적이고 실천하는 법문 수행에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지명 스님이 재미교포인 세인 스님, 후원회 신도 4명과 함께 길이 15m, 무게 15t의 중고 요트 ‘바라밀다’호를 타고 태평양 횡단에 나선 것은 1월 10일이다. 당시 미국 샌디에이고항을 떠나 2월 2일 하와이 호놀룰루항에 도착했다가 3월 13일 다시 출항해 4월 17일 일본 오이타항에 발을 디뎠다. 나이가 50, 60대인 이들에게 항해는 고행 그 자체였다. 끼니는 누룽지나 컵라면 등으로 하루에 한두 끼로 해결하고 그나마 파도가 치고 바람이 부는 날이면 굶기가 예사였다. 지명 스님은 “시속 40노트 이상의 강풍과 집채만 한 파도를 동시에 만났을 때와 무풍지대에 사흘간 갇혀 있을 때는 정말 죽는 줄 알았다”면서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인지 되짚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말했다. 세인 스님은 “통일신라 때 혜초 스님이 인도와 중앙아시아를 돌면서 ‘왕오천축국전’을 남겼듯이 태평양을 넘는 구도항해를 통해 ‘신왕오천축국전’을 남겼다”고 항해의 의미를 부여했다. 이번 계획을 기획하고 성사시킨 지명 스님은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템플대 종교학과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청계사와 법주사 주지를 지냈다. 이번 태평양 횡단에 쓰인 바라밀다호는 앞으로 서해안 섬 지방의 포교활동에 사용될 예정이다.

부산=조용휘기자 sile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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