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일’은 6·25전쟁 당시 북한 인민군이 인천상륙작전으로 퇴각하면서 연합군의 진격을 늦추기 위해 병사들을 나무등걸에 쇠사슬로 묶어 총알받이로 썼던 실화를 다룬 작품. 두 배우는 ‘눈깔 뒤집고 적군을 향해 돌진하라’며 나눠준 아편을 먹고 환각에 빠져드는 등 1시간50분 동안 발에 족쇄를 찬 채 퇴장하는 장면도 없이 죽음의 공포를 맞이하는 심리상태를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관객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영화배우인 유지태가 처음 서보는 소극장무대에서 어떤 연기를 보여줄까 하는 점이었다. 21일 시연회에서는 무대에서의 발성법이 익숙지 않은 탓에 음악이 깔리면 객석에서 그의 대사가 잘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공연 1주일째인 27일 다시 찾은 극장에서는 그가 연극의 맛과 리듬, 호흡을 확실히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우선 눈빛부터 달랐다. 영화 속에서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씩’ 웃는 연기가 트레이드마크였던 그는 무대에서 눈으로, 주름살로, 수염으로도 연기를 하는 듯 보였다.
자칫 어둡고 지루할 수 있는 이 연극에 웃음과 비장감을 더해주는 인물은 함경도 채삼꾼 출신 병사 ‘만필’역의 오달수. “나는 모리고 끌려왔어.” “이런 쌔드래기들.” 이런 질박한 대사를 뿜어내는 오달수의 절제된 연기는 순박하다 못해 귀엽고, 슬픈 상황에서도 웃음이 튀어나와 ‘이 시대의 채플린’에 비견될 만하다.
작가 겸 연출가 이해제씨가 쓴 대사들은 시처럼 문학적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죽음의 공포를 거대한 해일로 연출해낸 장면도 매우 신선하다. 그러나 생사를 넘나드는 공포가 약하게 표현돼 무대는 전장이 아니라 마치 무인도 같은 느낌을 주었다.
유지태는 12월경 ‘해일’ 재공연 무대에 선다. 영화배우로서의 스타의식을 뒤로한 채 무대에서 용감하게 자신을 날것으로 드러낸 그의 모습은 진정 ‘아름다운 도전’으로 보였다. 5월 2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행복한극장. 02-747-2090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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