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세상]“사람냄새” “은은함” 그래도 필름 카메라

  • 입력 2004년 4월 26일 16시 31분


“어머니께서 무언가를 건네주셨다. 카메라였다…. 코닥 ‘엑트라라이트10’. 내 생애 첫 카메라의 이름이다. 3만5000원. 당시 중국식당을 하셨던 부모님께서 무려 250그릇의 자장면을 팔아야 버는 돈과 맞먹는 가격이었다…. 어머니께서 가족사진을 찍자고 하셨다. 아버지와 어머니, 동생의 모습을 파인더로 들여다보고 있자니 울컥 눈물이 솟았다.”(‘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청어람미디어) 중에서)

탄생한지 100년이 넘은 필름카메라(필카)가 역사의 ‘뒤안길’로 밀리고 있다. 대신 디지털카메라(디카)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필름은 여전히 전문가의 사랑을 받고 있다.

아직까지는 아무리 성능 좋은 디카로도 따라잡을 수 없는 월등한 화질 때문이다.

필름에는 또 디카에 없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한 세기가 넘게 사람들과 함께 해 온 ‘필카의 추억’이 그것이다. 태어난지 불과 5년 정도에 불과한 디카로는 누구나 한 두가지씩 간직하고 있는 소중한 ‘필카의 추억’까지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디카 예찬론자들은 같은 사진인데 굳이 현상과 인화 과정이 필요한 필름을 쓸 필요가 있느냐고 주장한다. 디카가 이미지 센서의 감광소자를 통해 사진을 만든다면 필름은 빛이 감광유제(염화은)의 입자와 화학적으로 반응해 상을 맺는 방식이다. 필름의 화학입자를 픽셀 단위의 감광소자가 대체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감광 원리는 비슷하지만 필카 마니아들은 필름에 맺히는 ‘풍부하고 오묘한 맛’은 디카가 결코 따라올 수 없다고 반박한다. 한마디로 ‘사람 냄새가 난다’는 것.

이 때문에 필름은 아직도 전문가들과 마니아들 사이에서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보수적인 유럽 미국의 유명 갤러리들은 아직까지 디지털 출력사진은 접수하지 않고 염화은프린트만을 전시하고 있다. 광고사진계도 아직 필름이 주류다.

일부 음악애호가들이 CD보다 LP음반을 선호하듯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대립’은 어느 것이 기술적으로 더 탁월하느냐의 문제는 아니다. 사람의 귀와 눈에 어떻게 받아들여지느냐가 중요하다. 감성과 선호도의 문제라는 것.

사진작가 김녕만씨(55·월간 사진예술대표)는 “디카 시대라고 해서 필름의 매력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비행기나 고속철도를 타면 빠르고 쾌적하지만 자전거로 하는 ‘느린 여행’이 주는 감성과 사색의 느낌을 얻기는 힘들다. 빠르면 편하지만 반드시 좋은 건 아니다”라며 필름의 ‘은은한 맛’을 강조한다.

아마추어 필카 마니아인 김영식씨(29)는 “디카는 별 생각 없이 찍곤 해 가벼운 느낌이 있지만, 필카는 필름 가격도 의식하느라 두세 번 더 생각하고 셔터를 누르게 된다. 유지비는 더 들지만 필카에 대한 맛과 멋을 떨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훈구기자 ufo@donga.com

변영욱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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