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조소과와 이탈리아 브레라 국립 미술학교를 졸업한 서씨는 그동안 전시장 흰 벽에 벽돌 모양으로 검정 테이프를 붙이거나, 벽돌 모양으로 테이프를 붙인 방에 들어선 사람들의 반응을 촬영한 비디오 작품들을 선보였다. 다양한 매체와 첨단 기법을 향해 치닫는 시대에 아날로그 작업으로 돌아간 이유는 무엇일까.
“어느 날, 아이가 도화지에 연필로 그림 그리는 것을 보면서 영감을 받았어요. 작업에 대한 근본적 고민을 하던 차에 일상의 가장 흔한 재료로 표현하는 그림에서 다른 어떤 재료들보다 강한 ‘힘’이 느껴지는 사실이 당혹스러웠어요. 입시 때 만져 본 뒤 오랜만에 다시 잡은 연필이라는 소재에 몰입하면서 마치 연필이 손의 연장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연스러워졌어요.”
장인의 손맛이 느껴지는 그의 연필 드로잉 화면에 등장하는 소재는 성경의 ‘수태고지(受胎告知)’. 천주교 신자인 그는 수태고지를 화두로 한 다양한 장면들을 기둥과 캔버스에 옮겨놓았다. 전시장 자체를 인간과 신, 물질과 비물질, 내부와 외부, 3차원과 4차원의 접속과 소통이 일어나는 공간으로 꾸민 것.
작가는 “가장 비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 논리로 수많은 사람들의 신념이 되어 버린 수태고지 신화를 바탕으로 우리가 믿고 있는 것과 실재하는 것에 의문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02-732-4677∼8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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