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칼럼]이규일/'미술품 양도세' 지금은 안된다

  • 입력 2003년 12월 8일 18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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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일
정부가 입안한 소득세법 중 미술품 양도차익에 대해 재산소득세를 부과하기 위한 개정안이 국회 재경위를 통과해 곧 본회의 의결에 부쳐진다.

이 무슨 뚱딴지 같은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명분은 소득이 있으면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누가 국민 개세(皆稅)주의 원칙을 모른단 말인가. 배부르고 등 따뜻한 사람을 위해 세금을 감면해줄 필요가 없다는 논리다. 미술계가 과연 배부른 집단인지 아닌지는 누구보다도 정부가 잘 알고 있다.

미술작품을 통해 얻어지는 소득이 과연 얼마나 되는지 되묻고 싶다. 그것도 직접 생산자인 작가나 작품을 전시 판매하는 화랑이 얻는 수익금은 다른 일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100조원이 넘는 정부예산 중 국립현대미술관의 미술작품 구입비는 40억원에 불과하다. 미술계는 지금 1993년 이래 10년이 넘는 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금을 내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세금은 내야 한다. 미술인들도 그것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안 된다는 주장일 뿐이다. 내년부터 이 법이 시행되면 당장 미술판이 죽는다. 실명으로 거래해야 하기 때문에 애호가들이 주민등록번호, 주소, 성명을 대고 작품을 사겠다고 나서지 않을 것이 너무나 뻔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미술시장이 침체돼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이 법이 통과되면 미술시장 자체가 붕괴된다. 우선 미술시장을 살려놓고 양도세를 물렸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국민소득이 2만달러쯤 되면 꼭 이런 법이 아니라도 미술품을 통한 징세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가능할 것이다.

또 하나 다른 나라들처럼 미술작품을 사면 세금을 감면하거나 손비처리할 수 있도록 정부가 세제 지원을 하면 양도차익에 대한 소득세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일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 미술작품을 우리처럼 투기나 사치품으로 보는 경우가 있는가. 말로만 21세기는 문화경쟁 시대라고 외칠 일이 아니다.

바라건대 국회는 이 같은 미술계의 상황을 감안해 13년이나 끌어온 이 법안을 폐기하거나 최소한 유예해 빈사상태의 미술판을 살려놓고 그 뒤에 미술품에 대한 세제를 개정하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한다.

이규일 art in culture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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