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옥단어!' 주연 남미정 "내가 망가지니 연극이 사네요"

  • 입력 2003년 12월 8일 18시 18분


코멘트
연희단거리패의 연극 ‘옥단어!’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 남미정. ‘옥단어!’는 광복 전후 목포에 살았던 아낙 옥단의 삶을 통해 우리의 근대사를 되짚어보는 작품이다. -사진제공 연희단거리패
연희단거리패의 연극 ‘옥단어!’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 남미정. ‘옥단어!’는 광복 전후 목포에 살았던 아낙 옥단의 삶을 통해 우리의 근대사를 되짚어보는 작품이다. -사진제공 연희단거리패
어딘지 어눌해 보이면서도 천진난만한 눈빛, 장난기 그득해 보이지만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금방 울음을 터뜨릴 듯한 표정, 남루한 한복을 입은 품새. 딱 8·15 광복 무렵 이 땅에 살았을 법한, 조금은 모자란 듯한 아낙의 모습이다.

13일 막을 올리는 연희단거리패의 연극 ‘옥단어!’(차범석 극본, 이윤택 연출)의 주연을 맡은 배우 남미정(35)의 모습만 봐도 어렴풋이 ‘옥단’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옥단은 이 연극은 광복 전후 작가 차범석 선생의 이웃에 살았던 실제 인물.을 소재로 한 작품. ‘옥단어!’는 목포 사람들이 ‘옥단아!’라고 부르는 호칭의 사투리 발음. 옥단은 머리가 좀 모자라지만 건강한 마음을 가진 아낙으로 동네 대소사에는 빠지지 않았다.는 인물이다. 이 연극은 옥단의 순박한 일생을 통해 멀지 않은 우리의 과거사를 조명한다.

일제 강점기 말, 외톨이 옥단은 이 참봉 댁 잔심부름을 하며 근근이 살아간다. 이 참봉 댁 아들 영찬은 일제의 징병을 피해 도망 다니는데, 옥단에게만 자신의 거처를 알려준다. 옥단은 우연히 영찬의 행방을 입 밖에 냈다가 결국 영찬과 함께 경찰서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는 점점 미쳐간다.

“꾸밈없는 민초의 이야기예요. 차범석 선생님은 대사를 맛나게 쓰시거든요. 이 대본을 이윤택 선생님이 잘 꾸미셨어요. 웃음과 눈물이 교차하는 작품입니다.”

겉모습은 50년 전 아낙의 모습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지만, ‘말’은 얼마 전까지도 그를 꽤 괴롭혔다. 옥단이 쓰는 전라도 사투리가 쉽게 입에 붙지 않았기 때문. 그는 대구에서 태어나고, 부산에서 자랐다.

“처음에는 목포에 가서 현지 배우에게 사투리를 배웠어요. 최근엔 목포 출신 배우가 극단에 들어와 그에게 개인지도를 받았습니다. 같은 말이라도 억양이 왜 그렇게 다른지….”

일반 관객들에게 남미정이란 배우 이름이 그다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는 연극계에서 인정받는 중견 배우다. 스물두살 때부터 연극 ‘오구’의 할머니 역을 맡아 800회 넘게 무대에 섰다. 또 뮤지컬 ‘천국과 지옥’, 연극 ‘잠들 수 없다’를 직접 연출하기도 했다. ‘옥단어!’에서 그만의 관록을 기대하는 것도 탄탄한 그의 역량 때문이다.

아무리 배우라지만 ‘바보 역할’을 누가 좋아할까. 그렇지만 막바지 연습에 여념이 없는 요즘, 그는 티 없고 순박한 아낙으로 사는 데 푹 빠져 있다.

“분장한 모습을 보고는 동료들이 ‘망가지는 걸 즐기느냐’고 놀려요. 하지만 제가 망가질수록 연극은 재미있어지는 걸요.”

20일까지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대극장. 평일 7시반, 토 4시반 7시반, 일 3시 6시. 8000∼3만원. 02-763-1268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