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여성으로서의 나, 나는 누구인가

  • 입력 2003년 10월 16일 18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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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드럼통 7개에 인체의 각 부위의 모형을 매달아 놓은 '섬'. ‘파편화된, 분열된 여성의 자아’를 표현한 작품이다. 사진제공 일민미술관
버려진 드럼통 7개에 인체의 각 부위의 모형을 매달아 놓은 '섬'. ‘파편화된, 분열된 여성의 자아’를 표현한 작품이다. 사진제공 일민미술관
여성작가 윤석남은 1980년대 이후 한국사회에서의 여성 문제를 깊이 있게 천착해 왔다. 그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지도 않은 데다 마흔 넘어 그림을 시작했다. 하지만 독특한 자신만의 조형언어로 ‘늦깎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열정적으로 작품세계를 구축해 국내외 주요 기획전에 단골로 초대돼 왔다.

학창시절 그는 그림보다 문학에 가까웠다. 작가를 꿈꿨지만 고교 1학년 때 갑자기 아버지(영화감독 고 윤백남)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형편이 어려워져 대학진학을 포기했다. 직장생활을 하다 대학 영문과에 들어갔지만 2년만에 그만두고 결혼했다.

아이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 하는 중산층 주부의 일상은 겉으로 평온했지만 내면은 공허해 갔다. 뭔가 다시 시작할 수 없을까. 세상을 향해 자신의 존재를 소리쳐 알리고 싶었다. 5년 여간 서예에 몰입했으나 틀과 정형에 익숙한 작업에 이내 흥미를 잃고 말았다.

마흔 살 넘어 그림을 시작한 여성작가 윤석남은 198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서의 여성 문제를 깊이 있게 천착해 주목받고있다. 박영대기자

그즈음, 후배의 안내로 집 근처 화실을 소개받으면서 비로소 그림인생이 시작됐다. 그 때가 마흔 살. 붓과 물감, 캔버스를 대하자마자 ‘바로 이거다!’란 확신이 들었다. 마치 입시생처럼 석고 데생과 크로키부터 열심히 배웠다.

진정성은 전문성을 초월한다고 했던가. 신들린 듯 폭발한 그의 끼와 열정은 2년만에 첫 개인전으로 열매를 맺었다. 추상회화와 극사실주의 일변도였던 70년대 후반, 이 시대 아줌마들의 모습을 담은 그의 사실적이고 따뜻한 구상작업은 신선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는 “이 땅의 아줌마들 중에서도 어머니를 그릴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말한다. 갖은 고생을 다하며 6남매를 키워 온 자신의 어머니 모습에서 이 땅의 모든 여성과 모성(母性)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오십 나이에 그는 미국 유학을 떠나 새로운 세상과 만난다. 자유로운 미국 예술계는 그에게 온갖 상상력의 자양분을 제공했다. 여기서 다양한 물체나 방식을 이용한 작품을 눈 여겨 본 그는 평소 관심이 많던 나무란 소재를 통해 새 작업을 시작한다. 귀국 후 1993년에 열었던 ‘어머니의 눈’ 개인전에는 빨래판이나 버려진 나무를 이용해 어머니 조각상을 선보였다. 1997년 개인전에서는 자신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뾰족한 갈퀴가 솟아나온 핑크색 의자 등을 내 놓았다.

이번 일민미술관의 ‘늘어나다’ 전에 선 보인 작품들은 여성 일반에서 벗어나 ‘여성으로서의 나’의 삶을 보다 깊이 들여다본다. 그가 만든 여인상의 특징은 ‘길게 늘어난 팔.’ 옆으로 아래로 과장되게 늘어난 팔들은 삶에 대한 적극적 의지이자 세상을 향한 이해와 연대의 상징이다. 작품 ‘종소리’의 경우 조선시대 기생이자 시인이었던 이매창과 작가 자신이 함께 긴 팔을 늘여 종을 흔들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성적 삶을 옥죄는 질곡과 싸웠던 옛 여성 선배들과의 연대를 표현한 작품이다.

김희령 일민미술관 디렉터는 “그가 예전 작업에서 보여준 핑크색이 최근엔 옥색이나 자주색으로 대체됐다. 과거 작가가 내면의 불안과 좌절을 핑크란 강렬하고 화려한 색으로 가리길 원했다면, 이젠 이런 심리로부터 해방됐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17일∼11월30일 서울 세종로 일민미술관. 02-2020-2055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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