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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10월 10일 18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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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조헌용은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변해가는 바닷가 사람들의 삶을 첫 창작집에 알차게 묶어냈다. 김동주기자 zoo@donga.com
소설가 조헌용(30)이 최근 첫 창작집 ‘파도는 잠들지 않는다’를 펴냈다.
1998년 중편 ‘새만금 간척사업에 대한 소고’로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작가에게 새만금은 ‘통과의례’ 같은 것일까. 이번 소설집에는 ‘새만금 사람들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사실 작가와 ‘새만금’ 사이엔 깊은 인연이 있다. 그가 성장기를 보냈고, 아직도 부모의 생활터전인 전북 군산시 선연리가 바로 새만금 간척사업 지구의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
소설집에 실린 8편의 중단편도 모두 새만금 간척사업 지역을 배경으로 삼았다. 하지만 작가는 요즘 논란이 되는 환경이나 개발문제를 말하기보다 악다구니가 끊이지 않는, 지금 새만금 사람들의 삶을 선명하게 부각시킨다.
‘바다를 닮았던 힘차고 풋풋한 그들의 삶은 새만금 앞에서 너무 쉽게 변해 갔다. 나는 그들을, …새만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환경과 개발이라는 거대담론이 미처 담아내지 못하는 새만금의 오늘을 이야기하고 싶었다.’(‘작가의 말’ 중)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 넉넉한 바다보다 더한 벌이’가 없었고, ‘바다는 모자람 없이 누구에게나 일한 만큼은 갖게’ 해 주었지만 간척사업으로 인해 바다와 더불어 살아온 이들의 삶은 다른 쪽으로 밀려나고 만다.
새만금 사람들은 바다가 흙으로 메워진다고 배를 내놓기도 하고(‘바다에 길을 묻다’), 보상받은 돈으로 오히려 배를 사 간척사업이 끝나기 전까지 뱃일로 먹고 살 궁리를 하며(‘호랑이 시집가는 날’) 새만금 공사장에서 덤프트럭을 몰기도 한다(‘고래가 올 때’). 억지로 다른 삶을 강요당한 뒤 ‘마을 인심이 개떡 같아지면서 이곳저곳에서 심심찮게 싸우는 소리’도 와글와글 들려 온다.
‘바다에 길을 묻다’로 제목을 바꾼 등단작에는 간척사업으로 변화를 맞은 장씨네 3대(代)가 등장한다. 동네사람들은 보상금 몇 푼으로 노름에 빠져들고, 어떤 집은 밤 봇짐을 싸 훌쩍 떠나 버리기도 한다.
장씨는 ‘배무덤’이라 불리는 신시도(新侍島)에 ‘해화호’를 버리게 된 것이 못내 아쉽다. 신시도에 머물고 있는 장씨의 막내아들 해화는 폐선이 된 ‘해화호’를 차마 사진에 담지 못한다. 장씨의 손자 한빈은 간척사업을 둘러싸고 동네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싸움이 지겹다. 그러나 해화 삼촌은 한빈에게 “이곳도 알고 보면 참 좋은 땅”이라고 알 수 없는 말을 한다.
새만금의 오늘에는 어제와 내일의 이야기가 모두 담겨 있다. 소설에 그려진 새만금의 뒤틀린 삶은 날것 그대로지만 황량하지만은 않다. 지난한 삶 속에서도 행복을 찾는 사람들에게서 씨앗 같은 희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조헌용은 “때로 ‘어설픈 휴머니스트’라는 지적도 받지만, 삶에 대한 기대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문학평론가 류보선은 ‘나날이 황폐해지는 현실을 아파하면서도 카메라와 같은 냉정함으로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그리려는 작가’라고 그를 평가했다.
작가는 10월 말 중국으로 떠나 1년간 더 큰 세상을 보고 올 계획이다. 그에게 세상 모든 일은 소설이라는 가능성에 활짝 열려 있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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