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세아질서연구회 추계 세미나]"보수위기론 과장됐다"

  • 입력 2003년 9월 29일 18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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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치러진 대통령선거에 대해서는 ‘2030’ 세대가 ‘5060’ 세대를, 진보적 이념이 보수적 이념을 누르고 승리를 거두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 대선의 본질은 세대교체나 이념대결이 아니었고, 따라서 ‘보수의 위기’ ‘보수의 종말’이란 주장도 과장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전상인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26, 27일 한림대 한림과학원에서 열린 신아세아질서연구회(회장 이상우 한림대 총장)의 추계 세미나에서 논문 ‘2002 대선과 한국의 보수’를 발표하고 지난 대선의 의미를 ‘세대 혁명’이나 ‘이념 혁명’으로 확대 해석하는 데 제동을 걸었다. 그는 “이런 해석은 노무현 정부의 출범을 역사적 필연으로 정당화하려는 정치적 저의”라고 밝혔다.

전 교수는 ‘세대교체론’과 관련해 20대와 30대의 투표율이 각각 47.5%와 68.9%로 평균 투표율 70.8%보다 낮았고 그중 34%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에게 표를 던진 점을 지적하면서 “세대갈등 그 자체가 대선의 향방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오히려 “인터넷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자폐적이고 즉흥적이며 비주체적인 2030 세대의 실상을 부각시킨 계기가 됐을 뿐”이라는 것이 전 교수의 해석이다.

자유시민연대 등 보수단체 소속 회원들이 8월 15일 오후 서울시청 앞 광장을 가득 메운 채 개최한 ‘건국 55주년 반핵·반김 8·15국민대회’ 전경. 전상인 교수는 보수세력에게 거리시위 등 ‘동원의 정치’로 진보 세력과 맞대응하려는 유혹을 자제하고 보수 이념 건설에 나설 것을 제안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이념대결 논쟁에 대해서도 전 교수는 “지난 대선에서 진보와 보수의 대결은 순수 이념적인 차원이 아니라 조직과 동원의 영역에서 주로 벌어졌다”며 “이념의 정치세력화에 있어 보수가 진보에 진 것일 뿐”이라고 분석했다.

보수 세력은 오랜 기간 정체성을 드러내는 일이나 스스로를 조직화하는 노력을 게을리해 왔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진보는 독재정권 등의 물리적 탄압에 맞서 부단히 이념적 정체성을 만들어 왔고 생존을 위한 전략적 노하우를 능동적으로 개발해 왔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민주 통일 평등 자주 개혁 등 모든 좋은 가치를 진보가 독점하게 되고, 보수는 수구 및 독재와 동일시되는 결과를 자초했다는 것이 전 교수의 지적이다.

전 교수는 결론적으로 지난 대선의 의미를 “현재의 주류 사회와 기득권 구조를 타파하려는 80년대 운동권 세력을 중심으로 한 권력투쟁의 일환”이라고 규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보수는 스스로 ‘이념적 극단의 시대’를 불러오지 않도록 자제하고 우리 시대가 진정 필요로 하는 보수 이념을 건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같은 세미나에서 ‘한국 보수주의의 딜레마’를 발표한 강정인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역시 “한국 정치에는 보수 세력은 있으나 보수 이념은 없다”고 주장했다.

광복과 분단 이후 남한의 정치권이 여야를 불문하고 보수 세력의 독무대였던 데다 민주화 이후에도 보수적 정치구도가 정착돼 진보와 보수의 경쟁과 조율을 통한 체계적인 보수주의 철학이 등장하지 못한 것이 그 이유라는 게 강 교수의 설명이다. 강 교수는 특히 외세에 영합하고 과거의 전통으로부터 철저히 단절된 보수 세력이 근대화를 추진했기 때문에 전통주의로서 철학적 보수주의를 발전시킬 수 없었던 것을 한국 보수주의의 맹점으로 지적했다.

강 교수는 정치적 보수주의를 뒷받침하는 철학적 보수주의의 발전을 위해 △개혁지향적인 진보적 인사들과 권력, 언론, 문화적 헤게모니 등 정치적 자원을 공유하는 한편 △유교 등 전통적 사상 자원을 긍정적으로 활용하는 전략을 제시했다.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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