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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8월 22일 17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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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발칸 지역의 분쟁을 예견했던 로버트 카플란은 21세기 새로운 분쟁 지역으로 정세가 불안하고 자원이 풍부한 중앙아시아 지역을 지목했다. 중앙아시아 이슬람 사원에서 신도들이 기도하는 모습.사진제공 르네상스
“1960년대와 70년대의 베트남, 80년대의 레바논과 아프가니스탄, 90년대의 발칸에서 일어난 일이 21세기의 첫 10년간 카스피해 지역에서 일어날지도 모른다. 강대국들의 관심이 모아지는 일촉즉발의 지역으로서.”
미국의 정치평론가 로버트 카플란은 1998년 중·근동 12개국을 둘러보고 쓴 여행기 ‘타타르로 가는 길’에서 중앙아시아의 미래에 주목했다.
발칸의 동쪽에서 타타르(중앙아시아)에 이르는 이곳은 전 세계 석유 매장량의 70%, 천연가스 매장량의 40% 이상이 묻혀 있어 ‘21세기 실크로드’로 불린다. 정치적으로는 매우 불안정한 지역이어서 21세기의 냉혹한 ‘자원 전쟁의 각축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저자의 여정은 발칸반도의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에서 시작해 터키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이스라엘에 이르는 중동을 거쳐 그루지야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에 이르는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이동한다.
그의 여행은 새로움을 발견하는 과정이 아니다. 현실주의적 철학과 풍부한 역사 문화 종교 지식, 여러 차례의 여행 경험을 통해 이미 그려 놓은 이 지역의 세력판도를 현장 확인하는 작업에 가깝다.
“시리아는 쿠르드족 테러세력을 지원함으로써 유프라테스강에 댐을 만들어 남부 시리아로 향하는 물의 유입을 막은 터키를 응징하고 있다. 물은 두 나라가 전쟁 직전에 이를 정도로 중요한 이슈로 등장했다.”
“자유와 민주주의가, 강한 국가 형성에 도움을 주는 건 사실이지만 이들 나라처럼 기초가 허술한 지역에서는 셰바르드나제의 그루지야처럼 오직 힘과 마키아벨리적 책략에 의해서만 시민사회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저자의 여행기를 읽다보면 서양은 좋고 동양은 나쁘다는 특유의 이분법을 발견하게 된다. 루마니아 폴란드 체코 헝가리에 걸친 카르파티아산맥을 기준으로 한 쪽은 법과 제도와 개인이 존재하는 근대화된 서구이고, 다른 한편은 독재의 문화가 뿌리 깊은 동양이다.

“스탈린 독재를 그가 태어난 지역이나 문화로만 설명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동양적 영향을 그의 성격에서 일어난 우연한 일이었다고 치부하는 것은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가공할 테러의 사용, 엄청난 개인숭배, 거대 공동작업장에 수용소 인력을 동원하는 것 등은 마치 고대 아시리아나 메소포타미아의 전제 군주들을 방불케 했다.”
저자는 또 “이 세상에는 악의 무리가 있으며 세계는 희망보다 야망이 가득 찬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악과 야만을 제거해야 한다”고 역설함으로써 세계의 경찰국가를 자임하는 미국인들의 속내를 드러낸다.
미국에서 이 책은 2000년 4월에 출간됐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취임 초기인 2001년 3월 주말 휴가 때 캠프 데이비드에 틀어박혀 이 책을 탐독했고 일부 미 언론은 이를 걱정하기도 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타타르…’의 전편에 해당하는 ‘발칸의 유령들(Balkan Ghosts)’을 읽고 1999년 발칸전쟁 초기에 미온적 대응을 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카플란이 이에 대해 심적 부담을 느꼈는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그가 미국의 외교 정책에 앞으로도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리라는 점이다.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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