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일과 꿈]한젬마/'미술'로 세상과 대화하기

  • 입력 2003년 7월 23일 18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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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일본 도쿄와 오사카에서 개인전을 마쳤다. 요즘은 해외 아트페어와 개인전 등 해외활동에 비중을 두면서 가끔 국내 전시에 참여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전시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이제 방송은 안 하나요?” “새 책은 언제 내나요?”라고 묻는다. TV에 내 모습이 나오지 않는 것을 의아해하는 눈치다.

▼ TV-책 통해 ‘쉬운 미술’ 전달 노력 ▼

필자는 1995년 광주비엔날레 때 방송에 출연한 인연으로 대학원을 졸업하던 1996년, 케이블TV ‘A&C 갤러리’라는 미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기회를 갖게 됐다. 방송에 출연하면서 시작된 나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그림을 쉽게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였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그림을 어렵고 멀게 생각하고 있었고, 더 많은 이들은 미술에 아예 관심조차 없다는 것을 체감해야만 했다.

이렇게 시작된 나의 ‘그림으로 대중에 다가가기’는 이후 ‘그림 읽어주는 여자’라는 책으로 결실을 보았다. 이를 계기로 그동안 그림에 배신감을 가졌던 많은 이들에게서 호응을 얻었다. 방송과 출판을 통해 미술 전공자나 미술 관련자들의 목소리에서 벗어나, 미술에 대한 갈증을 호소하는 불특정 다수의 목소리를 듣게 됐다. 때문에 대중매체를 통해 미술을 좀 더 객관적이고 폭넓게 보여주고자 노력했다.

최근 창작활동에 주력하면서 우리 미술계의 풍토와 문제점을 체감하고 있다. 한때 세계미술계를 좌지우지했던 문화선진국 일본에서 개인전을 열었을 때의 일이다. 일본인들은 장바구니를 들고 전시장을 찾았다. 그들에게 전시장은 편안하게 둘러보는 ‘그림 시장’이었던 셈이다. 속내 드러내기를 꺼린다는 일본인이지만, 그림에 대한 의견 표현과 감상 표출에는 적극적이었다. 이들의 수준 높은 비평능력과 적극적 소통 의지를 보며 문화선진국의 일면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일본도 많은 전시장이 사라지고 작가들에 대한 후원도 예전 같지 않지만, 전시장에서 작가나 관객이 작품을 관람하고 의견을 나누는 모습은 일본인에게 미술문화가 몸에 배어 있음을 보여 주었다.

요즘 일본 미술계는 재도약을 준비 중이다. 올가을 개관을 앞둔 ‘모리 미술관’이 그것이다. ‘삶과 예술’이라는 모토를 내세우는 그들은 다소 구태의연하게 느껴지는 주제를 더 적극적이고 실천적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전시장의 위치부터 예사롭지 않다. 외로운 군림(君臨)보다 건물 내 스카이라운지로 연결되는 상층에 위치했고, 미술관과 다른 공간을 연결해 자연스럽게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었다. 또 미술관 주변은 형식적이고 위엄 있는 조각공원으로 구색을 맞추기보다 즐겁고 유쾌한 작품들을 배치해 관객이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새로운 옷 입기’를 시도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테이블, 의자 등 소품 역시 예술적으로 디자인해 ‘일상 속의 예술’을 보여 주려 노력하고 있었다.

특히 필자의 마음에 들었던 것은 평일에는 밤 10시까지, 주말에는 자정까지 전시장을 열어놓겠다고 선언한 점이다. 사실 오후 5, 6시로 한정된 관람 시간은 미술의 대중화에 저해요소였던 게 사실이다. 필자는 개인전 당시 밤 9시까지 전시장을 개방한 적이 있어 일본의 전시장 개방시간 확대는 각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이젠 창작으로 大衆에 가까이 ▼

내 한계이자 업인 ‘미술’로 세상과 호흡하는 작업을 계속할 생각이다. 단지 방송이나 글을 통한 그림이야기가 아닌, 작품과 더불어 새로운 시도를 하며 소통 의지를 펼치고 싶다. 전시장에서의 소통이란 대상의 폭이 좁고 반응도 느린 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래 왔듯, 소통 의지는 원활하게 전개되지 않더라도 갈등과 충돌을 통해 발전할 것이라 믿는다. 새로운 것들과 호흡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세상에 내놓을 것인가, 오늘도 고민한다.

▼약력 ▼

△1970년 생 △서울대 미대 서양화과 졸업(1993) △국내 최초의 미술전문 MC(1996) △저서 ‘그림 읽어주는 여자’(1999) △서울 도쿄 오사카 등에서 개인전(2003)을 비롯해 다수 전시 참가

한젬마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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