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노블리안스]박형준/선물포장비 8000원을 들여다보니…

  • 입력 2003년 5월 18일 18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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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백화점에서 만년필과 잉크를 산 후 포장을 맡겼습니다. 포장지로 감싸고, 리본을 붙이더니 8000원을 달라고 하더군요. ‘어, 너무 비싼데….’ 그때부터 백화점에 갈 때마다 포장코너를 유심히 지켜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1980년대는 백화점 포장코너 인기가 대단해 정문 옆자리에 있었답니다. 당시는 포장기술이 없어 백화점 포장코너는 상품에 날개옷을 달아주는 코너였었죠.

하지만 요즘은 거의 ‘찬밥 신세’라고 하네요. 웬만한 백화점 매장은 따로 포장을 해주기 때문입니다. 특히 샤넬, 루이뷔통 등 외국 유명브랜드들은 자사의 로고가 새겨진 박스, 포장, 리본, 종이가방까지 준다고 합니다. 굳이 돈을 들여 포장할 필요가 없어진 거죠.

5월 중에서는 스승의 날 직전이 가장 대목입니다. 한 ‘포장도사(道士)’는 “선물 내용물을 통해 분석한 결과 올해 경기가 최악”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지난해만 해도 상품권이나 고가(高價) 양주의 포장주문이 꽤 들어왔답니다. 하지만 올해는 집에서 사용하지 않고 남아있던 화장품이나 향수를 주로 포장해 달라고 한답니다. 10명 중 7명 이상이 집에서 안 쓰는 물건을 가져와 포장한다고 하네요.

‘포장 가격이 비싼 이유’에 대한 설명은 이렇습니다. 먼저 포장지가 보통 물건이 아니랍니다. 서울 남대문 시장에서 파는 일반 포장지는 1장(50×70cm)에 1000원 수준이지만, 백화점 포장코너에서 제공하는 포장지는 대부분 외제입니다. 1장에 2000∼5000원 수준이고요.

게다가 아무나 직원으로 채용할 수 없습니다. 최소한 3개월은 포장 기술뿐 아니라 고객 상담 방법, 서비스 마인드 등을 교육시켜야 하기 때문에 인건비가 높죠.

그런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포장비가 조금 더 싸졌으면 좋겠습니다. 한번 뜯어버리면 그만인 포장 값으로 자장면 2그릇 비용을 낸다는 건 낭비인 것 같습니다. 수입 포장지 원가가 너무 비싸 손익을 맞출 수 없다면 저렴한 국내 용지를 쓰면 되지 않을까요. 국산 용지도 ‘포장도사’의 손을 거치면 세련되게 변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 포장비는 1000원부터 시작하겠죠.

박형준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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