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일반인 대상 명품 인물사진 찍는 준 초이씨

  • 입력 2003년 4월 17일 17시 16분


인물 사진을 전문으로 찍는 사진 브랜드 ‘멜라’를 선보이는 사진작가 준 초이씨.신석교기자tjrry@donga.com
인물 사진을 전문으로 찍는 사진 브랜드 ‘멜라’를 선보이는 사진작가 준 초이씨.
신석교기자tjrry@donga.com
흰 셔츠를 가슴께까지 풀어헤친 채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은 한 30대 여인. 섹시한 눈빛과 포즈만 보면 영락없는 패션잡지 화보 모델이지만 사실은 대기업 총수의 딸.

금세라도 웃음보를 터뜨릴 듯 신이 난 50대 남성. 산타클로스처럼 양볼에 홍조까지 머금은 달뜬 표정이 인상적이다. 이 남자는 한 중앙언론사 회장. 평소 TV나 신문 지상에서 보던 모습과는 판이하다.

이 밖에도 ‘성난 얼굴로 돌아보는’ 한 청년의 일그러진 얼굴, 틀에 박힌 미소 대신 도도하게 무표정한 눈빛을 내는 한 꼬마의 가족 등 일반인의 인물 사진인데도 연예인 사진이나 사진 작품에 가까운 커트들이 눈길을 끈다.

이 사진들은 사진작가 준 초이씨(51)의 손을 통해 탄생했다. 그의 사진은 몇 커트에 200만원, 앨범으로 꾸밀 경우는 250만∼1000만원. 일반인들이 특별한 목적 없이 비싼 사진을 찍어두는 사례가 늘고 있다.

●현대인의 나르시시즘을 달랜다

준 초이씨는 기업 및 신제품의 지면 광고와 특급호텔 촬영 전문이다. 그런데 최근 고객이나 지인들 사이에 “평생 간직할 만큼 잘 나온 내 사진을 갖고 싶다”며 촬영을 부탁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준 초이씨는 시범 운영 끝에 일반인의 ‘작품 사진’을 찍는 ‘포트레이트 살롱’ 브랜드 ‘멜라(mela)’를 29일 오픈한다.

‘포트레이트 살롱’의 출범은 스티커 사진, 컴퓨터 포토샵 기술로 실제보다 훨씬 예쁘고 뽀얗게 나오는 연출 사진 프랜차이즈, 솔직 담백한 일상을 생생하게 담는 디지털 카메라 붐에 이은 새로운 트렌드다.

준 초이씨는 소장할 목적으로 자신의 ‘작품 사진’을 찍는 일반인이 늘어나는 트렌드를 ‘현대인의 나르시시즘’이 강해지는 데서 찾았다.

“나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아져서죠. 특히 인물 사진은 ‘사진 찍는 게 싫다’, ‘대충 찍어달라’고 내숭 떠는 사람들마저도 99.9% 이상이 ‘잘 나왔으면…’ 하고 내심 바랄 정도로 자기 만족을 위한 예술 영역이거든요.”

준 초이씨와 5명의 스태프가 함께하는 ‘멜라’는 조명과 소품을 미리 세팅해 놓고 사람을 그 속에 끼워 넣기 위해 획일적인 표정을 요구했던 것과 다르다. 작가와 담소하며 또는 식사를 함께 하며, 잠시 쉬거나 조는 가운데 가장 자연스러운 표정을 포착한다. ‘사진발’이 잘 받도록 메이크업 또는 스타일링 전문가가 도움을 주기도 한다. 산과 공원이나 고객의 집무실 또는 집, 추억이 어린 특정 장소에서 촬영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작가는 ‘입술을 옆으로 5㎝만 벌려라’ 또는 ‘이를 보일 정도로 활짝 웃어라’라고 지시하지는 않는다. 이 때 고객 스스로 인식하지 못했던 모습을 이끌어내기 때문에 다소 파격적인 모습이 카메라에 담긴다.

도도한 눈빛의 한 꼬마 가족의 사진처럼 의뢰자 스스로 “우리 식구는 웃는 모습이 모두 잘 안 어울려요. 웃지 않겠어요”라고 표정이나 사진 분위기를 결정하는 경우도 있다.

●포트레이트 사진의 매력

준 초이씨가 중앙대, 일본대, 도쿄사진전문대에서 사진을 전공한 뒤 1984년 미국 뉴욕 맨해튼에 스튜디오를 열었을 때 ‘주 종목’은 제품 사진이었다. 귀국 후에도 삼성전자가 처음으로 한국인 사진작가를 기용한 해외용 기업 PR 광고, 인터넷 쇼핑몰 위즈위드, 제일제당 햇반 시리즈, LG화장품 헤르시나, JW메리어트, 제주신라 호텔 등 광고 및 호텔 촬영을 주로 맡았다.

25년 간 그는 “완벽한, 상업적인, 가공된 현실”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런 사진들의 생명력은 한 광고가 소비자에 다가가는 6개월 동안이 전부죠. 몇 년 전부터 ‘영원성을 가진, 영원히 사랑 받는 사진을 찍겠다’는 욕심이 났죠.”

‘얼굴에 대한 집착’은 1995년 정트리오, 장한나, 신영옥 등 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 출신 음악가들의 사진집을 제작한 것이 계기가 됐다.그 중 가장 인상깊은 모델은 조수미씨.

“풍만하게 보이고 싶다면서 스스럼없이 드레스 안쪽으로 손을 넣어 가슴 선을 봉긋하게 정리하더군요. 길거리 한 복판에서 배꼽티를 입고 춤을 출 때는 주체하기 힘든 ‘끼’가 느껴졌어요. 까탈스러울 정도로 치밀한 프로정신이 돋보였죠.”

이들 클래식 음악가들은 뷰파인더를 통해 사람을 들여다보는 일의 매력을 새삼 일깨워줬다. 카메라 앞에선 사람들이 감춰진 속내를 내비친다는 것, 그래서 열 길 물 속 알기 보다 어렵다는 한 길 사람 속을 비교적 쉽게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9∼10월에는 사진 작가 조세현씨와 함께 ‘포트레이트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김현진기자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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