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삶]서울도심의 '동굴아저씨' 박진호씨

  • 입력 2003년 2월 23일 18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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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대기자
-박영대기자
서울 시내 한복판, 그것도 주택가에서 8년간 동굴생활을 해 온 사람이 있다고 하면 믿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런데 실제로 박진호씨(朴鎭鎬·43·사진)는 서울 성북구 안암동3가 132 인근 인공동굴에서 살고 있다.

그의 보금자리를 찾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동네 잡화점에 물어보면 “동굴아저씨요? 바로 저기가 그 동굴이지요”라고 단번에 알려준다. 그는 인근에서 유명인이다. 별명도 갖가지다. ‘동굴아저씨’부터 ‘네안데르탈인’까지….

커다란 은행나무가 버티고 선 동굴 입구, 인기척을 내자 박씨는 어린아이 같은 해맑은 미소를 띄며 ‘이방인’을 반겨주었다.

“남들은 나를 무슨 도닦는 사람으로 아는데 그게 아니에요.”

박씨는 지금 주소지에서만 36년째 살고 있다. 집이 오래돼 95년 공사를 하다가 그만 폭삭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처음에는 임시 방편으로 잠시 머물 생각에 집 뒤에 있던 동굴로 들어갔는데 살다보니 그대로 눌러앉게 됐다.

박씨가 홀로 살고 있는 동굴은 일제강점기에 방공호로 파놓은 것. T자형으로 생겨 너비 2m에 높이 1.6m로 길이만 50m가 넘는다. 박씨는 입구 쪽 2평 남짓만 사용한다. 겨울철에는 비닐과 스티로폼으로 막아 추위를 피한다. 이곳에서 산 지 8년이나 됐지만 박씨도 왠지 두려워 끝까지 들어가 보진 못했다.

동굴 생활의 장점으로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포근하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이곳에서 사는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여기서 아버지 어머니가 모두 임종하셨어요. 저 은행나무는 어머니가 심어놓으신 건데 여길 떠날 수가 없어요.” 그간 동사무소에서 다른 거처를 알선해 주기도 했지만 박씨는 단호히 거절했다.

이런 박씨는 지체장애 4급의 장애인으로 매달 동사무소를 통해 국민기초생활보장금으로 받는 21만원이 수입의 전부다. 얼마 전까지 안암역 인근에서 과일을 팔아 하루 몇 천원씩 벌이를 했지만 4년 전 당한 교통사고의 후유증이 심해 이마저도 포기하다시피 했다.

가진 것 하나 없다면서도 그는 “팔다 남은 것”이라며 기자에게 감 한 아름과 미소를 안겨주었다.

전 창기자 j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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