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선비'

  • 입력 2003년 1월 10일 18시 18분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선비

정옥자 지음/424쪽/2만5000원/현암사

최근 우리 사회에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다는 한탄이 화두가 되고 있다. 도덕적 책임성이 강한 정신적 귀족이 없다는 말이다. 광복 후 우리 사회가 끊임없이 표류해온 근본 원인을 찾는다면 돈 많은 속물적 귀족은 있으나 깨끗하고 주체적이며 개방적인 자세로 시대적 소명을 실천해가는 진정한 정신적 귀족집단이 없는 데 있을 것이다.

한국에도 옛날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있었다. 바로 선비다. 그리고 선비정신이 역사적으로 우리 사회의 중심을 잡아준 정신적 기둥이었다. 특히 500년의 장수를 기록한 조선왕조야말로 선비정신의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선비가 나서서 사회를 개혁하여 백성을 끌어안았고 국난에 목숨을 던져 의병을 지도했으며 왕조 중흥을 가져왔다. 물론 선비가 타락하면서 나라가 망한 것도 동시에 물어야 한다.

그런데 선비의 공과를 치열하게 묻고 따지면서 우리 시대의 고민을 풀어보려는 또 하나의 노작이 나타났다. 이 책은 저자가 그동안 학문적으로 축적해온 조선후기 사상사 관련 연구를 집대성한 것이지만 딱딱한 학술서의 체제를 벗어나 쉬운 필체로 선비의 총체상을 정리했다. 대표적 선비들의 삶의 현장을 간명하게 조명했기 때문에 오히려 문장에 힘이 실리고 있어 좋다.

여기서는 먼저 선비의 이상적인 인간상이 제시된다. 철저한 자기 혁신인 수기(修己)를 바탕으로 치인(治人)의 실천으로 나아가는 선비는 종교적 엄격주의자에 가깝다. 하지만 예술을 이해하고, 유머도 있고, 주체와 개방, 법고(法古)와 창신(創新)의 균형 감각을 지니고 자기 시대의 문제를 정면으로 해결해가는 인간상으로 정리된다.

또 유학자만이 아니라, 위로는 국왕과 아래로는 중인까지도 선비의 범주에 넣는다. 이는 선비를 이념집단으로 보고, 또 권력의 참모로 머문 서양의 지식인과 달리 지식과 실천(벼슬)을 겸비한 존재라는 특성에서 근거를 찾는다.

이 책에서 각론으로 제시된 25명의 선비도 이와 같은 선비상을 기준으로 선택되었으므로 조광조 이황 이이 같은 유학자는 물론 실학자 이익 박지원 정약용, 중인 조희룡, 화원 정선, 이항로 최익현 등 척사유신, 그리고 김윤식 민영익 등 실패한 개화선비도 등장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선비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풍조도 없지 않으나 그럴수록 자신의 생각을 이 책을 통해 검증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한국적 고품격 리더십의 전형이 무엇인가를 알고 싶으면 이 책을 보아야 할 것이다. 수백개의 도판은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선비 담론이 이 책을 계기로 더욱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

한 영 우 서울대 교수·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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