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2년 11월 21일 16시 41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그러면 그걸 넘겨받은 다른 팀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곤 했다. 프레젠테이션까지 성공하고 나면(매번 그랬지만) 모두들 ‘환상적인 플레이’를 자축했고, 그때마다 김 과장에게도 칭찬이 뒤따랐던 건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김 과장에게 프레젠테이션 기회가 주어졌다. 처음부터 기획된 건 아니고 중간에 부서끼리 약간의 충돌이 일어나면서 어쩔 수 없이 그가 나서게 된 거였다. 일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다 아는 사람이라는 이유와 평소 그의 용의주도한 행정능력을 높이 산 임원들이 내린 결정이었다.
그 역시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때보다 더욱 정성들여 자료를 만들었다. 그 자료만 보고도 참석자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났다.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한 그의 혀가 처음부터 꼬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걸 깨달은 순간, 머리로는 그만 끝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자료가 워낙 깔끔하고 완벽했으므로 굳이 긴 설명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결국 그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자기도 이미 잘못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지루하게 더듬거리는 어투로 장황한 설명을 1시간 넘게 더 계속하고 만 것이다. 끝내 한 임원이 이쯤에서 끝내자고 먼저 제지하고 나선 다음에야 그 지리멸렬한 설명회는 끝이 났다.
김 과장이 그런 실수를 하게 된 데는 강박적인 성격이 한몫했다. 무슨 일이나 완벽하게 끝내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일수록 실수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과 강박증이 몹시 크다. 이런 타입의 가장 큰 약점은 중간에 돌이키는 걸 잘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성격상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갈 데까지 가고 마는 것이다. 한번 머리 속에 이렇게 해야지 하고 입력된 일은 죽어도 다른 방향으로 수정이 안된다고나 할까.
김 과장 역시 자기 말이 꼬인다는 걸 알았을 때 순발력을 발휘해 “난 아무래도 프레젠테이션 체질이 아닌 모양이다. 그 대신 자료는 완벽하니까 그걸로 대신하자”고 했더라면 일은 산뜻하게 끝났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러지 못했으니 자신의 강박증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때로는 중간에 일을 돌이키는 것도 용기있는 행동이다.www. mind-open.co.kr
양창순 신경정신과 전문의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