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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10월 25일 17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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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산 계곡의 연못에 비친 보름달과 앙상한 나뭇가지가 쓸쓸함을 더하는 수묵화 ‘명경지수(明鏡止水)’. 한국 전통 수묵화와 다른 분위기를 띤 이 그림은 일본 화가의 작품이다. 이를 한국화의 거목인 소정 변관식(小亭 卞寬植·1899∼1976)이나 의재 허백련(毅齋 許百鍊·1891∼1977)의 작품들과 비교하면 어떨까.
‘명경지수’의 작가는 20세기 초 일본 화단에서 남화(南畵)의 대가로 인정받은 고무로 스이운(小室翠雲·1874∼1945)다. 일본으로 유학온 의재와 소정에게 가르침을 주기도 했다.
그의 작품 ‘명경지수’는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 근대 화가들의 작품들이 한국으로 넘어왔고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들 일본 근대 미술 198점중 70여점을 ‘일본근대미술 특별전’(29일∼12월10일)에서 선보인다. 이 전시회에는 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일본화 공예 조각 등을 선보인다. 이들 작품들이 공개되는 것은 처음이다.
전시작은 요코야마 다이칸(橫山大觀·1868∼1958) 가부라키 기요카타(鏑木淸方·1878∼1972) 오치 쇼칸(大智勝觀·1882∼1958) 미키 스이잔(三木翠山·1887∼1957) 등 근대 일본작가들의 작품이다. 모두 1933년 10월∼45년 3월 덕수궁 석조전의 이왕가(李王家)미술관에서 구입해 전시했던 것들이며 이들 작품들은 해방이후 덕수궁미술관을 거쳐 1969년 중앙박물관으로 이관됐다.
일본 총독부는 30년대부터 식민지 문화 정책의 일환으로 덕수궁에서 일본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해왔다. ‘과거의 조선, 현재의 일본’을 대조하는 문화 정책의 하나로 일본 작가들의 작품을 조선에서 선보였던 것. ‘이왕가미술관’은 당시 이 작품들을 시가보다 비싸게 구입했다.
김성구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장은 “그동안 국립중앙박물관의 상징성에 비추어 일제강점기 일본의 미술작품을 전시하는 게 어려웠다”며 “올해 한일월드컵을 계기로 문화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공개를 결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전시작 중 미키의 ‘꽃의 여행’은 고전적인 일본 미인의 모습을 은은하게 담고 있다. 미인화에 일가를 이룬 화가의 섬세한 필치를 엿볼 수 있다.
독특한 근대 풍속화의 세계를 개척한 가부라키는 작품 ‘정어리’에서 일본 서민들의 생활을 정감있게 묘사하고 있다.
요코야마의 ‘정적(靜寂)’은 여백으로 원근을 표현하는, 당시 일본화에서는 유래가 없던 화법을 담고 있다. 이 화가 특유의 필치는 ‘몽롱체(朦朧體)’로 불렸으며 초기에는 혹평을 받았으나 나중에 혁신적 화법으로 재조명되기도 했다.
쓰치다 바쿠센(土田麥僊·1887∼1936)이 한국에서 완성하지 못한 ‘기생의 집’ 밑그림에는 30년대 한국 사회의 단면이 드러나 있다.주성원기자 s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