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vs 디지털]슈만 ‘피아노 협주곡 A단조’

  • 입력 2002년 10월 22일 18시 11분


디누 리파티 (왼쪽)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각각 독주를 맡은 슈만 피아노 협주곡 A단조 음반.

디누 리파티 (왼쪽)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각각 독주를 맡은 슈만 피아노 협주곡 A단조 음반.

음악사상 가장 열정적인 연애의 주인공을 꼽자면 슈만을 빼놓을 수 없다. 장래가 불투명한 음악가에게 딸을 선뜻 내준다는 일은 당대의 대 음악교사였던 프리드리히 비크에게도 선뜻 내키는 일이었을 리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법정소송에 걸릴 지경까지 일을 끌고 간 것은 분명 시쳇말로 ‘오버’였다.

‘낭만주의’ 예술이 한창 꽃을 피우던 19세기 중반이었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사회는 열정에 넘치는 젊은이의 손을 들어주었다. 슈만은 결국 면사포를 쓴 클라라 비크에게 입을 맞출 수 있었던 것이다.

예술가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 ‘전기(傳記)주의’적 방법은 20세기에 들어와 예전과 같은 존중을 받지 못하게 됐다.

천재적인 기질의 사람이었으므로 천재적인 작품을 낳았다던가, 고생이 많았던 사람이었으므로 작품에 슬픔이 서려있다는 식의 분석은 너무 뻔하다는 것이었다. 좀 더 ‘과학적’인 방법이 없느냐고, 새로운 시대의 음악학자들은 물었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예술가의 생애를 연구하는 일에 다시금 주목하게 됐다. 청각장애 등의 시련과 신분상승의 욕구를 빼놓고 베토벤의 다이내믹한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예의 전기주의적 시각에서 하는 말일지도 모르지만, 슈만의 음악에는 분명 낭만주의 전성기에 살았던 젊은 작곡가의 열정이 느껴진다. 바그너나 리스트와 같은 ‘바람둥이의 열정’과는 또 다르다. 그의 작품 제목에 나타나는 ‘헌정(Widmung)’의 느낌과도 같은 헌신, 끈기, 묵묵함 속에서 내연(內燃)하는 열정을 뜻하는 것이다. 그 정수는 부인 클라라와 작곡가 자신에게 가장 친숙했던 악기,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A단조(1845)에서 나타난다.

오랫동안 이 작품의 최고 명연으로 여겨졌던 음반은 카라얀 지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루마니아의 피아니스트 디누 리파티가 협연한 엔젤사의 음반(1948년 녹음)이었다. 리파티는 이 앨범이 녹음된 2년 뒤 백혈병으로 눈을 감았다.

‘백조의 노래’와도 같은 이 음반을 들으며 숱한 여성들이 눈시울을 붉혔던 것도 당연하다. 사연만 애절한 것이 아니었다. 최악의 육체적 컨디션 속에서도 감정의 고조를 정밀하게 설계한 그의 연주속에는 한 예술가가 보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처절한 정신의 사투가 반영돼 있다.

최근 선을 보인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니클라우스 아르농쿠르 지휘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협연음반(1992년 녹음·텔덱)은 최고의 테크닉과 당당함을 지닌 이 시대의 명연이다. 아르헤리치 특유의 약간 서두르는 듯한 긴장의 미학과 집중력은 경쟁자들의 연주를 다소 따분하게 들리도록 만든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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