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양의 대인관계성공학]정말 어려운 ‘내 탓이오’

  • 입력 2002년 8월 22일 16시 08분


김 부장은 요즘 몹시 마음이 언짢다. 새로 팀에 들어온 부하직원 때문이다. 이 친구, 무슨 일을 시키면 제대로 처리하는 게 하나도 없다. 그러면서 왜 그런지 변명거리를 모아오는 데는 열 손가락이 모자란다. 거래처 직원이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 타 부서에서 업무협의에 전혀 성의를 안 보인다, 기타 등등. 모든 일이 누구 탓 아니면 회사 관행이 잘못된 탓이란다.

매사에 발뺌하고 변명거리 만들어내는 데는 1등이면서 목소리는 또 왜 그리 큰 지, 어처구니가 없어서 차라리 이 편에서 함구하게 만드는 재주까지 지녔다. 그때마다 김 부장은 머리를 싸매고 생각한다. 어째서 회사에서 징징거리고 변명이나 늘어놓는 친구들은 다 내 차지인가. 그 친구들 뒤치다꺼리하기에도 이젠 신물이 난다. 잘못되면 다 상사인 내 탓이 되고 마니,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경우인가. 요즘들어 오너 조카가 임원자리에 새로 앉더니 판을 다시 짜려는 건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내가 고분고분할 것 같지 않으니까 고의적으로 물을 먹이려는 건 아닐까. 이런 경우, 음모론은 대단한 설득력을 가지는 법, 한번 피어오른 의혹은 좀체 사그러들지 않고 그를 괴롭혔다.

사람은 누구나 일이 잘못되면 거의 본능적으로 그 책임을 전가할 대상을 찾기 마련이다. 정신과에서는 그것을 투사(投射)의 기제라고 부른다.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든 혹은 전적으로 발뺌을 하기 위해서든, 잘못의 원인을 내가 아닌 다른 대상에서 찾는 것이다. 김 부장도 예외는 아니다. 그 역시 자기한테서 문제의 원인을 찾기 보다는 음모론에 더 무게를 두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남의 탓의 가장 전형적인 예로는 김유신 장군을 들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애마가 여자의 집을 자꾸 찾아간다는 이유로 그 말의 목을 베었다. 그리고 그 일은 오늘날까지 단호함과 의지의 표본으로 전설이 돼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보다 더 지독한 투사도 없다. 만약 그가 진정으로 그 문제에 성숙한 인식을 가졌더라면 말의 목을 벨 것이 아니라 말이 다시는 그 곳에 가지 못하도록 길들였어야 했다.

한때 ‘내 탓이오’란 스티커를 차에 붙이고 다니는 게 유행이었다. 하지만 웬만큼 정신적 성숙이 이뤄지지 않고는 그렇게 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물론 애는 써봐야 할 것이다. 지금처럼 도처에 ‘남의 탓’이 넘쳐나서는 더 이상 곤란할 것 같으니까. www.mind-open.co.kr

양창순 신경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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