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卷一. 四海는 하나가…(16)

  • 입력 2002년 8월 8일 16시 11분


때를 기다리는 사내들 ④

“횡양군(橫陽君)께서 대택향(大澤鄕)에는 어떻게?”

장량은 마음에 짚이는 게 없지 않았으나 짐짓 그렇게 물어보았다. 그 건달이 세상 돌아가는 것은 혼자 다 안다는 듯 말했다.

“세상이 자꾸 어지러워지니 옛 육국(六國) 왕족들을 보는 진나라 관리들의 눈길이 곱지 않을 것은 뻔한 이치 아니겠소? 그래서 그곳으로 피해 갔을 거외다. 아직도 어두운 구석이 남은 곳이라 일이 터지면 몸을 숨기기 좋은 땅이니까. 들리는 소문이지만, 삼진(三晋〓 晋나라를 나눠 가진 韓 魏 趙)의 공자들이 모두 그곳 대택향에 몸을 숨기고 있다는 말도 있소.”

그 말을 듣자 장량은 다시 수레를 대택향으로 돌리게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시황제 35년. 천하는 진병(秦兵)들의 창칼 아래 안정되어 있는 것 같았으나, 하비 같이 큰 성안과 대택향처럼 진나라의 다스림이 미치지 못하는 곳은 많이 다른 듯했다. 시황제가 힘으로 아우른 천하는 어느새 깊이 금 가 있었고, 장량은 그걸 대택향에서보다 뚜렷하게 느껴보고 싶었다.

회음에서 대택향까지는 수레를 급하게 몰아도 하루길이 넘었다. 몸이 강건하지 못한 장량은 아예 길을 곱으로 늘여 잡고 수레를 천천히 몰게 해 대택향으로 갔다.

그런데 다음날 해하(垓下)를 지나 대택향으로 접어드는 길을 잡았을 때였다. 관도(官道)가 끝나고 소택지(沼澤地) 사이로 난 숲길 입구에 한 떼의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장량이 수레에서 내려 까닭을 묻자 기다리던 사람들 중에 하나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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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섶 숲에 떼도둑이 들어 한둘씩 지나가다 보면 당하기 십상이오. 재물만 털리는 게 아니라 목숨까지 잃게 되니, 차라리 기다렸다 여럿이 무리를 지어 지나는 게 좋을 것이오.”

그 말에 장량은 오히려 한 가닥 숨통이라도 트인 듯했다. 물샐 틈 없는 진나라의 법도 미치지 못하고, 사납고 날랜 진나라 군사들도 지켜내지 못하는 곳이 있다는 게 기쁠 지경이었다. 느긋한 마음으로 수레를 세우게 해 더 많은 사람들이 이르기를 기다렸다.

장량보다 먼저 온 수레 한 대와 여남은 명의 행인들은 한참 뒤에 다시 수십 명의 일꾼들과 호위무사까지 몇 딸린 장사치의 수레 두 대가 더해지자 비로소 길 떠날 채비를 했다. 그러나 머릿수는 많아도 싸울 사람이 적고 병장기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은근히 걱정하는데 마음 든든해 할 일이 생겼다. 좋은 말을 타고 긴 칼을 찬 두 젊은이가 보태진 까닭이었다.

제(齊)나라 사투리를 쓰는 그 두 젊은이는 생김부터가 여느 길손들과는 달랐다. 둘 중에서 좀 더 나이든 쪽은 별로 크지 않은 키에 몸집도 우람한 편은 아니었으나 고요하면서도 깊은 눈길이나 침착한 말투는 함부로 다가갈 수 없는 위엄을 느끼게 했다. 보다 손아래로 뵈는 쪽은 헌걸찬 외모부터가 사람의 눈길을 끌었다. 여덟 자 가까운 키에 오래 단련된 근육으로 뭉친 다부진 몸매라 누가 봐도 한 솜씨 지닌 무사였다.

사람들의 짐작대로 그 두 젊은이가 예사 아닌 솜씨를 보여준 것은 그날 해질 무렵이었다. 일행이 갈대 숲 우거진 늪가 길을 지나는데 과연 소문대로 한 떼의 초적(草賊)들이 쏟아져 나와 길을 막았다. 그걸 본 두 사람은 일행에게 아무 말도 없이 말 배를 박차 달려나가며 칼을 뽑아 들었다.

도둑 떼 가운데로 뛰어든 두 사람은 먼저 각기 한사람씩 베어 넘긴 다음에야 일행 쪽을 향해 손짓을 했다. 마치 약속하고 기다리는 대군에게 보내는 것 같이 거리낌 없고도 침착한 신호였다. 그걸 보고 힘을 얻은 일행이 목청을 돋워 외치며 내닫자 도둑 떼는 금세 기가 꺾여 오래 버텨보지도 못하고 갈대 숲으로 달아나 버렸다.

일행과 함께 다가간 장량은 수레에 앉은 채로 가만히 두 젊은이를 살펴보았다. 숨결 하나 흐트러진 데 없이 앞장을 서서 가고 있는 모습이 여간 당당하지 않았다. 거기다가 조금도 뽐내는 기색이 없다는 게 더욱 장량의 마음을 끌었다.

“나는 하비에 사는 장(張)아무개라 하오. 찾아볼 사람이 있어 대택향으로 가는 길이거니와 두 분 공자께서는 어디서 오시는 뉘시오?”

이윽고 날이 저물어 대택향 가까운 큰 마을에 묵게 되었을 때, 장량은 먼저 그 두 젊은이의 거처부터 찾아보고 물었다. 둘 중에서 보다 젊고 몸집이 우람한 쪽이 대답했다.

“저는 적현(狄縣)에서 온 전영(田榮)이라 합니다. 그리고 이분은 제 종형이신데, 함자(銜字)를 담(l)으로 쓰고 있습니다.”

그러는 전영의 태도는 겸손하기 그지 없었다. 그러나 종형 전담(田l)을 소개할 때는 무언가 존숭(尊崇)의 느낌을 담으려 애쓰는 듯한 데가 있었다. 장량이 다시 물었다.

“산동(山東)의 적현에 사시는 두 분께서 대택향 같이 험한 곳으로 가는 까닭은 무엇이오?”

“여정(呂政)이 스스로 시황제라 칭하고도, 일찍부터 ‘동남쪽에 천자의 기(氣)가 있다’하여 이쪽을 자주 돌아본다 합니다. 하지만 여러 해 유심히 살펴도 별다른 기운이 느껴지지 않더니 근래 대택향에 의사(義士)들이 많이 모여든다 해서….”

전영이 장량에게서 무엇을 보았는지 망설임없이 그렇게 대답했다. 그때 전담이라는 사내가 낮고도 무거운 목소리로 종제를 나무랐다.

“아우, 아직은 진(秦)의 천하이네. 너무 가볍게 입을 열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러자 전영이 새삼스레 장량을 살피다가 껄껄대며 받았다.

“형님, 이 아우도 보는 눈이 있습니다. 왜, 여기 이 장공(張公)께서 진나라 관리라도 되는 것 같습니까?”

“아무래도 아우는 말을 너무 함부로 하는구나!”

전담이 그러면서 한층 더 살피는 눈길로 장량을 훑어보았다. 그 조심스러운 태도가 문득 떠오르게 하는 일이 있어 장량이 앞뒤 없이 불쑥 물었다.

“공이 마침 전씨(田氏)라 하니 혹시 제(齊)나라의 왕성(王姓)이 아니시오? 왕성이 맞다면 그 마지막 전건(田建) 왕과는 어떻게 되오?”

그러자 꾸미고 감출 줄 모르는 전영의 눈가가 불그레해지며 눈빛에 문득 불길이 일었다. 그러나 전담의 표정은 더욱 어둡게 굳어질 뿐이었다. 한참을 노려보듯 장량을 살피다가 차갑게 받았다.

“적현의 한낱 촌놈이 망국의 욕된 군주와 무슨 연관이 있겠소?”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린 장량이 황급히 털어놓듯 말했다.

“공께서는 박랑사(博浪沙)에서 여정(呂政)의 수레를 철퇴로 치고 달아난 자객을 아시오?”

“그 자리에서 참살당한 장사 말고 달아난 자객이 하나 더 있었다고는 했습니다만 그게 누구라고는 밝혀지지 않았다 들었습니다.”

“부끄럽소이다만 그게 바로 이 몸이오! 자, 그럼 다시 물어보아도 되겠소이까? 제왕(齊王) 전건은 공과 어떤 사이요?”

그러자 전담은 다시 한번 장량을 한참이나 찬찬히 살피다가 비로소 털어놓았다.

“제가 의사(義士)를 알아보지 못하고 함부로 의심하였습니다. 숨김없이 이르자면 제왕(齊王) 건(建)은 바로 선친이 되오이다. ”

“그런데 어떻게 적현에….”

“선왕(先王)께서 간신 후승(后勝〓제나라의 재상으로 연횡책을 권하다가 나중에는 진나라에 항복하기를 권했다)과 빈객을 자처하는 진나라 간세(奸細)들의 농간에 넘어가 나라를 잃고 공(共)땅으로 끌려가실 때에 저와 종제 영(榮), 횡(橫〓田橫) 등은 가만히 몸을 빼내 달아났습니다. 그 뒤 선왕께서는 진나라의 박대로 아사(餓死)하시고, 저희들은 이리저리 숨어 떠돌다가 대여섯 해 전부터 적현에 자리잡게 되었지요. 마음속으로는 항상 진나라에 원수를 갚고 옛 나라를 되세우는 일만 생각해 왔으나 늘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근년 들어 이곳 대택향에 한 가닥 반진(反秦)의 기운이 떠돈다기에 아우와 함께 살펴보러 온 것입니다….”

냉정하고 침착하던 전담이었으나 한번 속을 털어놓자 새삼 감정이 복받치는지 눈물까지 주르르 쏟았다. 장량도 같은 망국의 한을 앓아온 사람이라 마음이 처연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절로 콧머리가 시큰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장량과 전담, 전영 세 사람은 곧 자리를 함께 하고 술을 청해 오랜 지기(知己)처럼 어울렸다. 하지만 아직은 진의 세상이라 당장 함께 무슨 일을 꾸밀 처지는 못되었다. 이튿날 대택향으로 들 때에는 다시 남남이 되어 각기 가야할 곳으로 나뉘었다.

장량은 대택향에서 횡양군 한성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회음의 건달이 일러준 대로 횡양군은 미리부터 그리로 옮겨와 한(韓)의 유민을 등에 업고 세력을 키운 공숙차(公叔借)란 토호의 집에 머물고 있었다.

서로 헤어진 지 이미 20년이 가까웠으나 장량의 옛 이름을 들은 횡양군 한성은 버선발로 뛰어나왔다. 장량이 그 손에 이끌려 공숙차의 객사로 들어가니 마침 그곳에는 귀한 손님 둘이 와 있었다. 환담이라도 나누고 있었던 듯, 횡양군이 그들에게 먼저 장량을 소개했다.

“두 분 공자의 허락도 받지 아니하고 낯선 이를 끌어들여 죄스럽소이다. 허나 명색 한(韓)의 왕족으로서는 결코 모르는 척 할 수 없는 집안의 사람이라 어쩔 수가 없었소. 여기 이 희공(姬公)의 조부 희개지(姬開地)는 우리 소후(昭侯) 선혜왕(宣惠王) 양애왕(襄哀王) 3대에 걸쳐 재상을 지냈고, 부친 희평(姬平)은 희왕 도혜왕의 재상을 지내셨소.”

그리고는 한번 망설이는 법도 없이 이번에는 두 사람을 장량에게 소개했다.

“희공, 예를 올리시오. 저기 앉아 있는 분은 옛적 위(魏)나라의 영릉군(寧陵君)이었던 위구(魏咎)란 공자이시오. 지금은 무도한 진나라가 서인(庶人)으로 만들어버렸으나 위나라의 왕통이 다시 이어진다면 저분이 바로 적통(嫡統)이 되오. 그 곁에 선 분은 공자 위표(魏豹)이시니 바로 영릉군의 종제가 되는 이외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장량은 전담 전영 형제에 이어 다시 위구 위표 형제를 만나게 된 것이 묘한 우연이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다시 한번 돌이켜 생각하니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만큼 때를 기다리는 사내들이 많고, 그들은 이제 대택향같이 진나라의 통제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있는 땅을 찾아 그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때도 멀지 않은 듯했는데, 특히 위구 형제로부터 그 무렵 시황제가 동군(東郡)에서 저지른 끔찍한 폭정의 소식을 들었을 때는 더욱 그랬다.

“옛 위(衛)나라 땅 동군에 하늘에서 커다란 돌이 하나 떨어졌는데, 거기에는 ‘시황제가 죽고 땅이 나뉜다’란 글이 씌어져 있었다 하오. 그 말을 들은 시황제는 사람이 새긴 것이라 보고 어사(御使)를 보내 그 부근을 샅샅이 뒤지게 했소. 그러다가 끝내 범인을 찾지 못하자 그 돌이 떨어진 땅 인근 백리에 사는 사람은 모조리 죽이고 돌은 불태워 버렸다고 하더이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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