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驥 尾(기미)

  • 입력 2002년 7월 14일 17시 28분


驥 尾(기미)

驥-천리마 기尾-꼬리 미 勸-권할 권

吸-빨 흡膾-회 회 炙-구운고기 자

‘높은 곳에서 손짓하면 멀리 있는 사람도 보게 되는데 그것은 팔이 길어져서가 아니다. 또 바람을 등지고 외치면 멀리 있는 사람도 듣게 되는데 그것은 목소리가 크기 때문이 아니다. 수영을 못해도 배를 타면 강을 건널 수 있다.’

荀子(순자)의 勸學篇(권학편)에 나오는 말이다. 요컨대 사람이란 處(처)해 있는 狀況(상황)이 매우 重要(중요)하다는 뜻이다. 孟子(맹자)의 性善說(성선설)에 반기를 들고 性惡說(성악설)을 주장했지만 敎育(교육)을 중시하고 또 敎育에서 환경이 무척 중요하다고 설파한 점은 같다.

驥尾는 ‘千里馬의 꼬리’다. 얼핏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 같지만 사실은 깊은 뜻이 담겨져 있다. 말이나 소에 보면 吸血蟲(흡혈충)이 있다. 아주까리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거머리처럼 찰싹 달라붙어서 피를 빨아먹고 산다. 이 놈은 워낙 느림보라 자세히 보지 않으면 움직임을 느끼기 쉽지 않다.

그러나 이처럼 느린 놈도 일단 千里馬의 꼬리에 붙어 있으면 가만히 있어도 하루에 천리 길을 가게 된다. 그것은 吸血蟲이 빨라서가 아니라 千里馬에 빌붙었기 때문이다.

驥尾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司馬遷(사마천)이다. 그는 伯夷(백이)와 叔齊(숙제)의 忠節(충절)을 높이 평가해 70列傳(열전)의 맨 첫 편에서 다루고 있다. 그런데 忠節로 유명했던 사람이 어디 그들 둘만 있었을까?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기록에 남아 있지 않아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곧 기록의 유무가 중요하다는 뜻인데 그것을 높이 평가해주고 기록해 주는 사람은 다름 아닌 聖人君子(성인군자)들이다. 다시 말해 아무리 훌륭한 인물일지라도 그들의 붓끝 밖에 있다면 그 명성은 후세에 전해질 수가 없게 된다.

司馬遷에 의하면 伯夷와 叔齊의 이름이 후세에 전해지고 또 忠節의 대명사로 人口에 膾炙(회자)될 수 있었던 까닭은 孔子(공자)라는 聖人이 그들의 忠節을 높이 기려 기록해 두었기 때문이다. 만일 孔子가 아니었던들 두 사람의 이름이 전해질 수 있었을까? 마치 吸血蟲이 千里馬의 꼬리에 붙어 있으면 하루에 천리를 가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했다.

伯樂(백락)이 있고부터 名馬(명마)가 알려지고 明君(명군)이 있었기 때문에 賢相(현상)이 있을 수 있었던 것처럼, 훌륭한 인물은 그를 알아주는 이가 있기 때문에 세상에 빛을 볼 수 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鄭 錫 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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