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의 고향을 찾아서]퇴계 이황과 안동

  • 입력 2002년 5월 19일 17시 45분



《퇴계 탄생 500주년을 기념하는 ‘세계유교문화축제’의 개막식이 열린 지난해 10월5일, 퇴계 이황(退溪 李滉·1501∼1570)의 종택(宗宅)부터 도산서원(陶山書院)을 거쳐 안동시내까지 약 30㎞에 달하는 길에서는 전국에서 모여든 수천 명의 유림이 의관을 갖추고 깃발을 든 채 행렬을 이뤄 걸어가는 장관이 펼쳐졌다. 이는 바로 그곳이 ‘안동’이었기에 가능한 것이었고 그 중심에는 퇴계 이황으로부터 비롯된 유학의 전통이 있었다.》

지난해‘세계유교문화축제’ 개막식에 맞춰 정부와 경상북도가 국학 육성의 큰 뜻을 가지고 개원한 ‘한국국학진흥원’ 전시실에 들어서면, 또 한번 보는 이를 압도하는 ‘장관’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것은 바로 ‘영남학파의 퇴계학 전수도’. 약 1000명에 이르는 인명으로 꽉 채워진 퇴계학의 계보가 그려져 있다.

“각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이 전수도에서 자기 선조의 이름을 찾아내고는 뿌듯해 하며 돌아갑니다. 만약 이름이 없으면 자료를 싸들고 와서는 퇴계 선생의 후학이 분명하다며 전수도 안에 넣어달라고 성화를 하시지요.”

주희가 중국에서 성리학을 집대성했다면 이황은 그 성리학을 한국화해서 우리의 삶 속에 스며들게 했다. 이황은 34세에 과거에 급제해 벼슬에 나갔다가 48세에 풍기군수직을 버리고 예안의 고향으로 돌아와 향리에 은둔하며 ‘퇴계의 안동’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가 관직을 물러난 데는 혼란스런 정쟁과 그로 인한 사화, 그 과정에서 맞게 된 형의 죽음 등이 직접적인 이유가 됐지만, 그는 이미 은퇴 전부터 주어진 벼슬들을 여러 차례 사양하며 관직에 별다른 욕심이 없음을 보였다. 그의 마음은 이미 현실의 명예나 부귀영화보다 더 큰 이상적 유교문화공동체의 실현에 있었다.

도산서원의 현판

고향으로 물러난 후 그는 한양과 동떨어진 안동에서 성균관이나 수도권의 서원에 못지 않은 수준의 학문 및 문화공동체를 만들고 그곳에서 조선을 이끌어 갈 인재들을 길러냈다. 그의 학문을 계승하며 서원을 지켰던 월천 조목(月川 趙穆), 선비의 절개가 돋보였던 학봉 김성일(鶴峯 金誠一), 경세에 능했던 서애 유성룡(西厓 柳成龍), 다재다능한 재능을 가지고 대외관계에 능했던 한강 정구(寒岡 鄭逑)…. 이황은 제자들 각각의 능력에 따라 선비가 갈 길을 가도록 했고, 그 제자들과 그들의 제자들이 모여 조선의 유교문화를 주도하며 지금의 ‘안동’을 만들었다.

그 흔적은 지금도 안동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유성룡의 병산서원, 김성일의 의성 김씨 종가, 이상정의 고산서원, 진성 유씨의 동성 마을, 광산 김씨 종가의 고택을 모아놓은 오천문화재단지, 조선시대 대표적인 향교인 예안향교…. 지금도 전국에서 가장 품격 있게 전통문화가 보존된 그 중심에는 언제나 이황 자신과 그의 도산서원이 있었다.

이황에 대해서는 학문적 업적만으로도 조선 최고의 유학자라고 칭송하는 데 별다른 이의가 있을 수 없다. 그는 인간의 본성으로 주어진다는 리(理·자연법칙 겸 도덕규범)의 능동성을 누구보다도 강조함으로써 조선성리학의 주요한 봉우리를 형성하며, 인간이 유교적 이상사회를 자발적으로 실현할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확신시키는 이론적 기반을 마련했다. 게다가 그는 안동의 유교 공동체를 통해 이를 몸소 실천해 보인 것이다.

또한 그가 자신보다 26세나 어린 제자 기대승과 8년에 걸쳐 벌였던 이른바 ‘사단칠정(四端七情)논쟁’은 조선성리학의 심성론(心性論)이 성리학의 종주국이었던 중국을 능가하게 하는 기념비적인 것이었을 뿐 아니라, 진리 탐구를 위해서는 모든 권위를 넘어서야 한다는 학문적 자세를 보여주는 모범이 됐다.

도산서원의 전경

현실적 이해관계에서 한 발 물러서서 가장 이상적인 유교문화와 선비상을 추구했던 퇴계의 정신은 개화기를 거쳐 일제시대에 들어서면서 그의 후예들이 성리학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이념과 이상의 추구에 나서게 하는 기반이 됐다. 구한말에 유학의 정신으로 무장하고 외세와 맞선 위정척사운동이 가장 격렬하게 벌어진 곳도 바로 안동지역이었지만, 애국계몽운동에 힘쓰다 대거 서간도로 망명해 독립운동에 투신하고 사회주의 운동에 앞장섰던 많은 사람들이 나온 곳도 바로 ‘퇴계의 안동’이었다.

“젊었을 때는 이 전통의 무게에 짓눌려 있는 듯한 안동의 문화에 대해 반발도 많이 했지만 이제 보니 이런 문화의 보고(寶庫)가 없어요. 이제는 이것을 전세계적으로 활용할 길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황과 같은 진성 이씨 집안에서 태어나 안동에서 살고 있는 이효걸 한국국학진흥원 자료관장(안동대 교수)은 이 문화를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문화콘텐츠를 만들고 국학을 더욱 발전시키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의 한옥을 그 구조와 건축방식부터 재질과 색감까지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하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이는 물론 훼손돼 가는 문화유적을 디지털로라도 보존하고 이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도 의미가 있지만, 서양에서 나는 재료의 색감과 질감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컴퓨터 기술을 정말로 한국화하는 기반이 될 겁니다.”

‘여금’(‘여기 지금’ 이라는 뜻)이라는 이 벤처기업에서는 동양학을 전공한 소장학자들과 컴퓨터 설계 전문가들이 모여 이황이 건설한 안동 문화의 디지털화를 실현해 가고 있다.

면적은 서울의 약 2.5배나 되면서 인구는 약 18만에 불과한 데다 그나마 식수원 보호지역이라 산업개발도 안 돼서 인구가 계속 줄어들고 있는 도시. 오히려 그래서 안동은 옛 모습 그대로 잘 보존돼 왔고 이제 문화도시의 새로운 모델을 꿈꾸고 있다.

반세기 동안 다듬어져 온 퇴계의 꿈은 21세기에도 계속된다.

김형찬기자·철학박사 khc@donga.com

◆ 퇴계의 四端七情論

퇴계의 글씨

이황과 기대승 사이에 벌어진 사단칠정(四端七情)논쟁은 1559년에 기대승(奇大升)의 문제제기로 시작돼 8년여에 걸쳐 계속됐다. 그 뒤 1572년 성혼(成渾)에 의해 다시 촉발돼 성혼과 이이(李珥) 사이에서 논쟁이 전개됐고, 이후 조선의 지식인이라면 누구나 이 문제에 대해 나름의 견해를 표명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중요한 논점이 됐다.

이 논쟁의 쟁점은 성리학에서 만물을 형성하는 리(理·법칙 또는 원리)와 기(氣·질료 또는 에너지)가 인간의 정신 및 심리 작용에서 어떻게 기능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이는 성리학에서 가장 기본적인 개념인 ‘리’와 ‘기’의 관계, 그리고 인간의 심(心), 성(性), 정(情) 전반에 걸친 문제를 포괄하는 것이었다.

성리학에 의하면 만물 중 하나인 인간 개개인 및 인간 각 부분의 구성과 그 기능은 ‘리’와 ‘기’의 결합에 의해 이뤄진다. 그렇지만 단순한 물체가 아니라 생명활동과 고도의 정신활동을 하는 인간에게는 다른 생물체와 구별되는 독특한 정신 및 심리 작용이 있고, 이 역시 ‘리’와 ‘기’의 합에 의해 이뤄진다. 인간만의 이 독특한 정신 및 심리 작용은 인간과 동물을 구분 짓고, 그런 인간들이 자신들만의 특수한 집단을 형성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기존의 불교에서 벗어나 새로운 이상사회를 건설하려 시도하고 있던 당시에 성리학적 이상사회 건설의 이론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이런 문제가 관심의 초점이 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거의 1000명에 달하는 인물로 이뤄진 '영남학파의 퇴계학 전수도'(한국국학진흥원). 이 전수도는 아직도 계속 보완작업중이다.

이황은 사단(四端·네 가지 본성)과 칠정(七情·일곱 가지 감정)을 구분해서 인간의 본성인 사단은 칠정과 달리 ‘리’가 직접 발현된다고 보았다. 물론 이황이 ‘법칙’을 의미하는 ‘리’가 작용성을 가지지 않는다는 성리학의 기본원칙을 모른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는 이렇게 인간의 본성과 감정을 구분하고 ‘리’의 적극적인 능동성을 강조해야 인간이 도덕적 본성을 능동적 자발적으로 발휘하며 유교적 이상사회를 실현할 수 있다는 ‘교육적 효과’에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그가 주장하는 ‘리’의 작용성에는 전제가 있었다. 인간이 먼저 능동적으로 ‘리’를 실현하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결국 유교적 이상사회 실현을 위해 인간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참여를 주장한 것이었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 四端七情이란

사단(四端)〓인간의 선천적인 네 가지 도덕적 본성으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惻隱之心·측은지심),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잘못을 미워하는 마음(羞惡之心·수오지심), 양보하는 마음(辭讓之心·사양지심), 잘잘못을 분별하는 마음(是非之心·시비지심)을 가리킨다.

칠정(七情)〓인간의 본성이 겉으로 드러난 일곱 가지 감정으로, 기쁨(喜·희), 노여움(怒·노), 슬픔(哀·애), 두려움(懼·구), 사랑(愛·애), 미움(惡·오), 욕망(欲·욕)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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