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2년 5월 3일 18시 21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내가 요즘 틈틈이 읽고 있는 광복 직후의 오기영(吳基永) 칼럼집에서 ‘실업자’라는 항목을 보니 이런 대목이 나온다. “이미 관중은 싫증이 났는데도 불구하고 정치무대에서는 여전히 파쟁극만 연출하고 있으니 이들의 눈에는 민족반역자와 반동분자와 빨갱이 극렬분자만 보이는 모양이고, 그 많은 실업자는 보이지 않는가 보다.” 국민을 고루 잘 살게 하는 것이 정치의 본령이거늘 민생은 뒷전으로 돌리고 좌우파 투쟁에 골몰하는 당대 정치를 그는 “자기의 정치적 실업을 겁내어 정작 민중의 실업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라고 통렬히 비판했다. 요즘의 세태에 옮겨 놓아도 크게 어그러지지 않는다고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은 아닐 터.
▼다양한 관객 하나로 묶어▼
이게 꼭 민생문제에만 국한되지는 않는 것 같다. 민생만큼 간절한 것은 아니지만, 그 못지 않게 중요한 문화에 대해서도 유비(類比)가 성립될 것이다. 물론 말로는 문화가 21세기의 키워드라고, 정치가들도 구두선처럼 외우긴 해도 아마 자신들도 진심으로 믿지는 않을 게다. 정치가들에게 문화란 보채는 아이에게 떡 한 개 떼어 주듯 몇 푼 주어 너그러운 국량을 보이는 체면치레용 장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듯싶다.
그런데 남 탓만 할 수도 없다. 문화계 종사자들 스스로 그 대접에 익숙한 게 탈이다. 분열과 분단을 넘어설 문화의 강력한 통합력을 염두에 둘 때 우리 문화계 안팎에 도사리고 있는 낮은 문화의식은 우리 사회의 큰 병통의 하나가 아닐 수 없다. 이탈리아 통일운동의 과정에서 분출한 베르디의 오페라가 단적으로 보여주었듯이, 한 민족의 위대한 시대의 개화는 문화적 폭발과 함께했던 점을 상기하자.
이 답답한 세태에 ‘영원한 사랑 춘향이’는 한 줄기 청신한 바람이었다. 필자는 지난 토요일 이 음악극을 보러 오랜만에 국립극장에 갔다. 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백대웅 원장이 예술총감독을, 원로 박용구 선생이 대본을, 그리고 예술종합학교 연극원의 김석만 교수가 연출을 맡았다. 솔직히 말해 나는 무얼 보러 가는지도 몰랐다. 백 원장이 보여주고 싶은 작품이 있다고 해서 겸사겸사 갔던 터다. 그런데 막이 오르자마자 나는 마음 속 깊이 차 오르는 온 기쁨으로 무대와 화합했다.
이 음악극은 우리가 잘 아는 춘향이 이야기를 대본으로 한 것이다. 민족서사라고 해도 조금도 모자람이 없는 춘향전을, 디테일을 과감히 생략하고 일곱 마당으로 재구성한 그 템포가 우선 즐겁다. 건너뛰어도 관중은 그 어간을 환히 아니까. 이 작품은 공통서사를 택한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나는 새삼 무한한 재구성의 가능성으로도 풍요로운 춘향전을 공유하게 해준 판소리 광대들의 은혜에 커다란 경의를 바쳤다. 토요일 저녁 국립극장에 모여든 그 다양한 사람들, 다른 생활의 길에서 다른 꿈을 안고 객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일거에 하나의 기억으로 묶어주는 춘향전의 힘!
그리고 이 음악극이 젊다는 게 너무 좋다. 서양음악에만 혼을 빼앗긴 줄 알았던 젊은이들이 어느 틈에 전통예술을 자기 식으로 먹어버렸다. 나이든 명창들이 나이든 청중을 앞에 놓고 벌이기 십상인 이런 공연의 상투를 이탈, 무대는 온통 ‘황금나무의 삶’으로 약동한다. 연희패, 노래패, 연주패, 춤패들의 난장을 통해 춘향전은 무거운 외투를 벗고 이름 그대로 ‘봄의 향기’로 발랄하다. 그렇다고 상업주의와 대중추수주의로 천박한 무슨 마당놀이의 난장판과는 격을 달리한다. 자기 신명대로 각자 놀되 전체 마당의 신명은 그것대로 오롯한 광배를 두른 축제의 무대, 정말 장관이었다.
▼민족 오페라 가능성에 새 빛▼
그런데 가장 큰 경이는 새로운 음악극의 모색이다. 그것은 판소리와 창극의 유구한 전통을 잇되 그를 넘어 이 땅에 존재해온 모든 음악언어를 포용하여 우리 시대의 음악을 만들려는 젊은 도전이요, 사실주의·비사실주의의 양분법을 넘어 우리 시대의 연극을 창조하려는 제3의 기획이다. 나는 여기서 우리의 오랜 숙원인 민족오페라의 가능성을 보았다. 벌써 다음 음악극이 기다려진다.
최원식 인하대 교수·국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