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학의 꿈 20여명 3년째 동문수학 편입도 나란히

  • 입력 2002년 4월 2일 16시 44분


올해 중부대 한약자원학과에 편입한 40세 이상 고령 학생들
올해 중부대 한약자원학과에 편입한 40세 이상 고령 학생들
“김 사장, 나 대신 들어와서 좀 뛰어.” “알았어 박 사장.”

지난달 27일 전북 무주리조트. 전날 이곳으로 MT를 온 중부대 한약자원학과 학생들의 체육대회가 한창이다. 축구 경기장 옆에 마련된 족구 경기장 근처에 가자 ‘사장’이라는 호칭이 쉴새 없이 들려왔다. 대학교 MT에 웬 사장들?

역시 ‘정 사장’으로 불리는 정성진씨가 설명한다. MT에 참가한 20여명의 ‘사장’들은 대구 약전골목에서 한약 도매업을 하는 진짜 사장들. 그리고 모두 올해 한약자원학과에 편입한 학생들이었다. 50대가 6명이고 나머지는 40대.

이들이 대학 동기생이 된 사연은 이렇다. 3년전 이들 중 누군가가 나주대에 한약자원개발학과가 신설된다는 소식을 골목 사람들에게 알렸다. 그 가운데 20여명이 한약 유통관리사 자격증을 따고 싶다는 생각에 진학을 결심했다. 그리고 2년 과정을 마친 뒤 모두 중부대로 편입한 것.

대구에서 충남 금산까지 통학을 해야하는 이들은 대부분의 수업을 수, 목요일에 몰아 듣는다. 전세버스로 수요일 새벽에 출발해 수업을 하고 같은 여관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수업을 마치면 함께 돌아간다.

정씨는 “시험 기간이 되면 약전골목에 있는 술집들 매상이 뚝 떨어진다”고 말했다. 저마다 장사는 뒷전으로 하고 시험공부를 하다 모르는 게 있으면 옆집 가게의 동기생에게 달려간다.

3년째 함께 통학을 하다보니 이들은 서로 형제 이상으로 가까워졌다. 박정규씨(53)는 “각 집안의 경조사에 빠짐없이 참가하고 부부 동반으로 여행도 다닌다”며 “주문이 몰려 약재가 모자라면 옆 가게 물건을 가져다 대신 팔아주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나이 탓에 암기력이 떨어지긴 하지만 수십년간 약재상 일을 해왔기에 ‘어린’ 학생들은 ‘실전’에는 이들을 따라갈 수 없다. 나주대에 다닐 때는 방학 동안 가게마다 어린 동기생들을 한 두명씩 불러 실습 기회를 주기도 했다. 박씨말대로 ‘산학 협동’인 셈.

전날 밤 처음 만난 기자의 소매를 이끌고 가 막걸리 한 잔씩을 권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이웃 아저씨의 넉넉한 마음이 느껴졌다. 조카뻘인 30대 교수를 정중히 “교수님”이라고 부르는 모습에선 스승에 대한 진심어린 존경심을 엿볼 수 있었다.

무주〓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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