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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3월 11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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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다름슈타트에서 윤이상의 곡을 연주한 것을 계기로 그와 친해졌습니다. 자신의 신념에 투철하면서도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이었죠.”
그는 1967년 동베를린 사건당시 가장 먼저 윤이상 납치사실을 알렸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내가 지휘하는 작품 리허설에 오기로 돼있었는데 나타나지 않았죠. 라디오에서 베를린 거주 한국인들이 실종됐다는 소식을 듣자 마자 한국대사관을 찾아갔고, 소설가 귄터 그라스 등 지식인을 규합해 유력지 ‘차이트’에 청원서를 발표하는 등 구명운동을 펼쳤습니다.”
1967년 ‘동백림 사건’ 당시 윤이상의 실종을 가장 먼저 알아채고 구명운동에 앞장 섰던 그는 20년전 서울에서 열린 연주회에 대해 “플라자 호텔에서 세종문화회관까지 가는 동안 세 번이나 검문을 당했다”라며 ‘신변의 불안과 공포를 느꼈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윤이상의 음악은 긴장과 집중, 날카로움과 힘을 중시한다. 안락함과 편함을 바라고 감상할 수는 없는 음악”이라며 더욱 많은 사람이 그의 음악세계를 이해하기 바란다는 희망을 표시했다.
통영〓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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