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개막 지휘자 트라비스 "윤이상 음악은 날카로움-힘 중시"

  • 입력 2002년 3월 11일 18시 26분


8일 창원시립교향악단의 개막연주회는 20년전의 특정 시공간에 대한 기억으로 채워졌다. 서슬퍼런 5공 초기였던 1982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는 ‘대한민국 음악제’가 열렸다. 유신정권과 차별화를 원했던 5공정권은 행사 일부를 윤이상에 할애, 그의 예술적 조력자인 지휘자 프란시스 트라비스를 초청해 KBS교향악단을 지휘, 윤이상의 ‘서주와 추상’ 등을 연주하게 했다. 그러나 그뒤 윤씨가 광주학살을 소재로 칸타타 ‘광주여 영원히’를 작곡한데다 북한이 윤씨와 가까워지자 그는 다시 ‘금기’의 벽 속으로 되돌아가게 됐다. 당시 연주회 프로그램인 ‘서주와 추상’, 쇤베르크의 ‘바르샤바의 생존자’, 스트라빈스키 ‘불새’ 등은 20년이 지나 2002 통영국제음악제 개막연주회 프로그램으로 고스란히 옮겨졌다. 20년전과 올해 같은 프로그램을 지휘한 프라시스 트라비스(82)를 페스티발하우스에서 만났다.

“1959년 다름슈타트에서 윤이상의 곡을 연주한 것을 계기로 그와 친해졌습니다. 자신의 신념에 투철하면서도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이었죠.”

그는 1967년 동베를린 사건당시 가장 먼저 윤이상 납치사실을 알렸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내가 지휘하는 작품 리허설에 오기로 돼있었는데 나타나지 않았죠. 라디오에서 베를린 거주 한국인들이 실종됐다는 소식을 듣자 마자 한국대사관을 찾아갔고, 소설가 귄터 그라스 등 지식인을 규합해 유력지 ‘차이트’에 청원서를 발표하는 등 구명운동을 펼쳤습니다.”

1967년 ‘동백림 사건’ 당시 윤이상의 실종을 가장 먼저 알아채고 구명운동에 앞장 섰던 그는 20년전 서울에서 열린 연주회에 대해 “플라자 호텔에서 세종문화회관까지 가는 동안 세 번이나 검문을 당했다”라며 ‘신변의 불안과 공포를 느꼈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윤이상의 음악은 긴장과 집중, 날카로움과 힘을 중시한다. 안락함과 편함을 바라고 감상할 수는 없는 음악”이라며 더욱 많은 사람이 그의 음악세계를 이해하기 바란다는 희망을 표시했다.

통영〓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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