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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3월 11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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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 출신인 청마 유치환의 시 ‘깃발’처럼 통영은 지금 깃발들의 물결로 뒤덮여있다. 푸른색 흰색의 깃발과 포스터는 2년 동안의 ‘윤이상음악제’를 거쳐 올해 비약적으로 탈바꿈한 ‘통영국제음악제’의 새출발을 알리며 거리의 표정을 바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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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일정이 3일에서 9일로 길어졌을 뿐 아니라 프랑스라디오필하모니 아마티4중주단 등 세계적 연주단체들이 처음 축제에 참여했고,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지는 ‘프린지’(외곽행사)축제가 구 시청사를 리디자인한 ‘페스티벌하우스(축제극장)’와 축제마당을 하루종일 수놓고 있다.
성황속에 막을 올린 초반부의 연주회도 순조로운 성과를 보였다. 개막연주회에서 프란시스 트라비스의 지휘로 윤이상 ‘서주와 추상(Fanfare and Memorial)’ 등을 연주한 창원시향은 관악기의 미묘한 색채변화에 중점을 두는 윤이상의 어법을 비교적 완숙하게 소화하면서 2년 전에 비해 비약적으로 발전된 모습을 보여 ‘현대음악 전문악단’으로의 공인에 한발 다가갔다. 개막연주회와 이틀째 아마티 현악4중주단 연주회를 협연한 클라리네티스트 에두아르트 브루너는 웬만한 CD에서도 맛볼 수 없는 화려한 음색의 변화와 기교를 펼쳐 원정 음악팬들을 압도했다. 하루 서너개씩이나 진행되는 수많은 콘서트 프로그램은 어느쪽을 택할지 선뜻 결정을 주저하게 만드는, 군침도는 ‘음악의 뷔페’다.
시민들의 활발한 참여는 이 행사의 전망을 더욱 밝게 만든다.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자원봉사단 ‘황금파도’를 결성해 외지인에 대한 안내 통역 업무 등을 도맡고 나섰다. 7일 황남동 바닷가에서는 축제 성공에 대한 염원을 담은 동판이 800m의 ‘인간띠’로 전달돼 페스티벌하우스에 설치됐다.

한 축제 관계자는 “양식업으로 대표되는 지역경제의 쇠퇴가 통영시민들의 머리위에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국제음악제가 통영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라는 의식이 주민들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자가 밤 10시경 한 음식점에 들어섰을 때 주인은 ‘문을 닫을 시간’이라고 말했다가 기자의 목에 걸린 ‘통영국제음악제 보도’ ID카드를 보고는 “어서 들어오시라”고 손짓을 보냈다. 기자가 버스 정류장에서 시민에게 행선지를 묻자 그는 “통영 버스표 없으시지예?”라며 선뜻 표 한 장을 내밀었다.
그러나 첫발을 내딛은 통영국제음악제는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겪고 있었다. 명칭에서 ‘윤이상’이 빠진 것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현대음악 축제’와 ‘지역민들이 폭넓게 참여할 수 있는 음악축제’ 사이에서 가능성을 폭넓게 열어놓으려는 고민의 흔적이기도 하다. 20세기음악 이해에 대한 고도의 훈련이 없이 선뜻 다가설 수 없는 ‘윤이상 음악’ 만을 내세운다면 진주 창원 마산 거제 등을 포함한 지역민의 호응을 결국 잃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윤이상’을 중심에서 점차 배제시킨다면 특색없는 축제로 전락할 수도 있다.
개막에 앞서 열린 기자회견에서는 “독일 ‘도나우에싱엔’ 축제처럼 작곡가 집중교육코스 등을 배치한 동아시아의 본격 현대음악제로 키울 의향이 없느냐”는 등의 질문이 쏟아졌다. 주최측은 즉답을 미뤘다. 한 행사 관계자는 “현대음악 전통이 풍부한 유럽 어디서나 육로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도나우에싱엔과 통영은 입지조건이 전혀 다르다”라며 고민을 표현하기도 했다.
통영〓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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