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억울하지만 용서할게요 '진짜 도둑'

  • 입력 2002년 2월 26일 15시 55분


◇ 진짜 도둑 /윌리엄 스타이그 글 그림 /96쪽 7000원 베틀북(초등 3∼6학년)

진실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사람들은 심한 절망과 함께 분노를 경험한다. 분노가 쌓이다 보면 증오가 되고, 악이 되는 것. 후에 누명을 벗게 된다 해도 그 기억은 좀처럼 지우기 힘들다. 더구나 자신이 온 정성을 다해 사랑하고 존경해 왔던 사람으로부터 부당한 의심을 받게 된다면 그가 받을 마음의 상처는 말로 하기 어려울 것이다.

왕실 보물 창고의 수문장인 가윈에게 ‘너는 이 왕국의 수치다’라는 말은 그 어떤 처벌보다 더 잔인했다. 가윈은 심한 상실감에 빠진 채 절규한다.

‘내가 겪은 일은 추악한데도 세상은 왜 이토록 아름답게 그대로 있는 걸까?’

명예가 무엇인지 아는 가윈에게 이토록 큰 상처를 준 사건은 전혀 예기치 못했던 일로부터 시작된다. 자신의 잣대로 철통같은 수비 태세만 갖추어 놓으면 아무 일 없을 줄 알았던 왕은 쥐 한 마리가 드나들 수 있는 구멍 따윈 생각조차 못한 것이다. 그리곤 다른 가능성을 배제한 채 오로지 열쇠를 갖고 있는 가윈에게 모든 책임을 돌려버린다.

한편 ‘진짜 도둑’ 데릭은 우연히 왕실의 보물 창고에 들어와 그 현란한 아름다움에 매료된 채 보물을 자기 집으로 옮기기 시작한다. ‘훔치는 게 아니라 그저 내오는 것’이라며…. 보잘것없던 집이 점점 근사해지자 데릭은 아무에게나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간직한 채 흐뭇하기만 하다. 그러나 평소 존경해 왔던 가윈이 누명을 받게 되자 잠자코 있던 데릭의 ‘양심’이 꿈틀거린다. 그제야 보물에 둘러싸여 찬란한 빛을 뿜어대던 방이 빛이 바랜 듯 보이고, 누추하게만 여겨졌던 곰팡내 나는 침대가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익숙한’ 것이 주는 편안함, 그리고 위안.

보물이 제자리를 찾고, 가윈의 무죄도 증명되었지만 자신의 명예가 회복된 줄도 모르고 떠돌고 있을 가윈을 생각하니 왕을 비롯한 왕국의 모든 이들은 아직도 불행하다. 이제는 가윈이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던 이들에게 용서를 해야 할 차례가 온 것이다. 용서는 결국 사랑임을 깨닫게 해 주는 가윈의 모습에서 이제야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음을 알 수 있다.

얼마 전 영화로 만들어져 화제가 됐던 ‘슈렉’의 원작자이기도 한 작가 윌리엄 스타이그는 양심 때문에 괴로워 하는 이와, 자신의 무고를 증명할 길 없어 절망하는 이의 참담한 마음을 아주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

어른들이야 억울하면 화도 내고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만, 선생님이나 부모님의 절대적인 권력 앞에 분노조차 맘껏 표출할 수 없는 우리 어린 친구들에게 이 책이 작은 위안이라도 건넬 수 있기를 희망한다.

오 혜 경 주부·서울 강북구 미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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