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기자의 현장칼럼]전사원 금연운동 '한국 프뢰벨'

  • 입력 2002년 2월 14일 14시 16분


담배가 단순한 기호품이 아니라 '악마의 풀잎'으로 취급받고 있다. 많은 흡연가들이 아파트 베란다의 '반딧불족'으로도 모자라 회사를 들락날락하는 '길거리족'으로 내몰릴 판이다. 담배를 끊지 못한 죄로 직장 내의 지정된 좁은 공간에서 무리지어 볼품없이 담배를 피워온지도 오래다. 이제 일부 회사들은 그 최후의 공간마저 없애고 있다.

회사원들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초라한 '길거리족'이 될것인가. 아니면 귀찮아서라도 담배를 끊을 것인가.

유아 교육 교재 및 교구인 ‘프뢰벨 은물’로 유명한 한국 프뢰벨.

이 회사에 지난달 31일 평소에 보지 못한 공고가 나붙었다. 2월 1일부터 흡연자 전원을 대상으로 금연운동을 실시한다는 것.

회사는 금연운동 실시에 앞서 흡연자 현황 파악에 나섰다. 최재건 사장 15개비, 황성규 이사 20개비, 권태영 이사 20개비 등 임직원 30여명의 이름과 직급, 일일흡연량 등을 일일이 조사해갔다.

흡연자들은 우선 금연서약서를 썼다. ‘나의 건강, 사랑하는 가족과 직장동료들의 건강을 위해 나의 명예와 의지력을 걸고 금연할 것’을 서약하고 ‘금연운동기간 중 위반(흡연)을 하였을 때는 회사의 조치를 따른다’고 약속했다.

공고가 붙은 날 당장 오전 오후 두 차례로 나눠 인근 한의원에 가서 금연침을 맞았다. 금연침은 3일 간격으로 다섯 차례를 맞게 된다. 공고 다음날에는 흡연자 전원에게 200여개비가 든 금연초가 지급됐다. 그동안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암묵적으로 용인됐지만 이제 그것도 금지됐다. 화장실에 있는 모든 재떨이가 치워졌다.

담배는 한때 지성과 멋의 상징이었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당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라는 뉴스위크 기자의 질문을 받았을 때 이렇게 대답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사는 것과 담배 피우는 것을 포함한 모든 것일테지요.”

사르트르는 카페에 앉아 책을 쓰면서 줄기차게 담배를 피워댔다.

‘이유없는 반항’의 제임스 딘은 가죽옷을 입고 담배를 꼬나문 모습으로 영원한 반항아의 이미지를 표현했고 ‘카사블랑카’의 험프리 보가트는 바에 앉아 홀로 담배 피우는 모습으로 강하고 고독한 중년 남자의 이미지를 연기했다.

그런 담배가 지금은 조지 W 부시미 대통령의 표현을 빌리자면 ‘악의 축’ 정도로 취급받고 있다.

작년 말 애연가였던 코미디언 이주일씨가 폐암으로 쓰러지고 올들어서는 하루 담배 2갑씩을 피운다던 야구해설가 하일성씨가 심근경색으로 쓰러지자 각 언론사들은 연일 담배가 마치 만병의 근원인 것처럼 보도하느라 바쁘다.

담배의 악영향은 따지고보면 담배가 16세기말 유럽에 소개된 직후부터 언급돼왔다. 쥐에게 담배 니코틴 소량을 투입했을 때 쥐가 즉사했다는 것은 이미 19세기 초엽에 증명됐다. 굳이 1950년대 미국에서 과학자들이 흡연과 폐암의 직접적인 관계를 인정한 것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신의 육체가 보내는 신호를 인식한다. 모든 흡연가는 담배에 불을 붙이는 순간, 그리고 첫 담배의 연기를 빨아들이는 순간, 담배에 독이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안다.

신원섭 영업관리팀 과장(35). 8년째 회사를 다니고 있는 그도 전에 금연을 해 본 적이 있다. 3년 전쯤인가. 담배를 피우고 자면 팔 다리가 쑤시고 아침에 기분이 개운치 않던 차에 제약회사에 다니는 친구로부터 들은 말이 있어서 독한 마음을 먹고 금연을 했다. ‘담배 끊는 독종과는 사귀지도 말라’는 비난을 감수하며 4개월을 버텼다. 그러다가 한번은 회사에서 누군가와 시비가 크게 붙었다. 한바탕 하려다 순간 꾹 참고 바깥에 나갔다. 그리고는 담배와 라이터를 사서 다시 흡연을 시작했다.

그는 이번에 다시 금연에 들어갔다. 당연히 금단현상이 나타나고 화장실에 갈 때나 식후에는 담배에 대한 강렬한 욕구를 느꼈다. 며칠 전에는 금단현상이 가슴압박으로 나타나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다. 그럴 때는 회사에서 지급한 금연초를 입에 문다. 담배맛은 안 나지만 불을 붙이고 연기를 빨고 내뿜는 것으로 대리만족을 하고 있다.

성창영 전산팀 사원(28). 직장 생활은 6년 했지만 이 회사로 옮겨온 지는 4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회사분위기에 채 익숙해지지도 못했는데 회사가 흡연자 명단을 받더니 갑자기 전면적인 금연운동을 선언해 당황스러웠다.

흡연량은 하루 1갑 정도. 아직은 젊어서인지 몸이 안 좋아 담배를 끊어야 한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다만 방안에 배어 있는 담배냄새가 싫을 때 금연을 몇 번 생각해봤다. 그도 역시 이번에 금연을 시도했지만 만 6시간을 채 버티지 못했다. 결국 회사 밖에 나가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말았다. 몇시간씩 담배를 안 피우고 있으면 머리가 띵하면서 담배가 그리워진다. 아직도 하루 5, 6개비는 피우고 있다.

서범택 총무팀 사원(28). 회사에 들어온지는 2년반이 됐다. 금연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고 지금도 담배를 완전히 끊어야겠다는 생각은 없다. 회사에서 지급받은 금연초는 동료에게 줘 버렸다. 집에서는 계속 담배를 피우고 있고 회사에 와서는 불편하지만 잠깐씩 밖에 나가 담배를 피우고 들어온다. 그는 회사가 회사 밖의 개인적 공간에서의 금연까지는 강요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최재건 사장(46). 그 자신 흡연가다. 회사의 금연 결정은 바로 자신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그 역시 쉽게 담배를 끊지는 못하고 있다. 아직은 점심 먹으러 나가서는 회사에서 못 피우던 담배를 한두 대씩 피우고 들어온다고 고백한다.

그는 담배가 개인의 건강에 나쁠 뿐만 아니라 유아를 상대로 하는 기업의 이미지에도 맞지 않다는 생각에서 금연운동을 시작했다. 평소에도 직원들에게 오후 5시 퇴근과 주 5일 근무를 강조하며 직원들이 가정에서 아이들과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보내도록 권해온 그는 ‘담배 냄새에 찌들고 니코틴 때문에 이가 노랗게 변한 사람이 맑고 순수한 아이들의 교육문제를 다루는 사업에 적당한가’라는 생각을 늘 품어왔다.

최 사장은 물론 금연운동이 쉽게 성공할 것이라고는 장담하지 못한다. 약 10년 전에도 회사 차원에서 금연운동을 벌인 적이 있다. 당시 금연수당으로 한 사람에게 5만원을 지급하고 금연에 성공하는 경우 50만원의 포상금을 지급하기도 했지만 사회적 분위기가 성숙되지 못했던 탓인지 시간이 흐르면서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가 알고 있는 분명한 사실 하나는 금연을 결심하기 위해서는 담배가 건강에 해롭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누구나 오늘 피우는 담배가 마지막 담배가 되기를 바라지만 항상 마지막 담배가 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금연은 개인적 결단의 문제가 아니라 주변 환경의 문제이며 그는 그 환경을 바꾸는 실험에 착수한 것이다. 그들의 실험이 과연 성공할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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