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권희경 교수 '고구려 벽화' 출간

  • 입력 2002년 1월 23일 18시 25분


“고구려 하면,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저 광활한 들판을 호령하는 사나이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 당당함, 그 자유분방함….”

최근 ‘우리 영혼의 불꽃-고구려 벽화’(태학사)를 출간한 권희경 대구가톨릭대 교수(61·불교미술사·사진)의 한국미술사 연구 역정도 고구려 사내만큼이나 당당하다.

이 책은 1989년부터 99년까지 다섯차례에 걸쳐 중국 지안 고구려 벽화와 둔황 석굴의 벽화 등을 둘러보고 그 과정과 느낌을 기록한 책이지만 단순한 답사기 차원을 넘어선다.

미술사학자로서의 그의 당당함은 고려 불교미술에 대한 관심이 미미하던 1974년, 과감하게 불교미술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

작가 지망 철학도(경북대)였던 그는 글을 쓰고 싶어 1965년 대구매일신문 기자로 들어갔다. 8년 동안 문화부 기자로 일하다가 미학을 공부해 좀더 멋진 문화부 기자가 되기 위해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유학을 떠났다. 그는 귀국했다가 신문사에 사표를 내고 다시 일본 규슈대 미학미술사연구실 연구생으로 유학을 갔다. 사표를 냈지만 공부도 하고 견문도 좀 넓히고 돌아와 다시 기자를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1년쯤 지난 73년말, 이곳 저곳 답사를 다니던 도중 그의 인생을 바꾸어놓을 운명적인 만남이 이뤄졌다.

“우연히 사가현 현립박물관에서 고려불화인 수월관음도를 발견했습니다. 이렇게 뛰어난 불화가 있다니, 충격이었습니다. 순간, ‘이걸 두고 내가 한국에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이거구나’ 결심을 했죠.”

고려의 수월관음도는 세계 최고의 불화로 꼽히는 명품. 그 충격과 감동 속에서 그는 이듬해 고려불화를 공부하기 위해 규슈대 대학원 학위과정에 정식으로 입학했다. 기자 시절 대학 스승인 아나키스트 하기락 선생의 ‘미학을 공부하라’는 권유까지 물리칠 만큼 기자를 하고 싶었던 그였지만 이 고려 불교미술은 기자보다 더 매력적이었다.

그리곤 대학원 스승으로부터 “고려 사경(寫經·불경을 베껴 적은 것)을 해봐라. 연구자가 한명도 없으니”라는 권유를 받고 사경을 연구 테마로 정했다.

이렇게 불교미술 연구를 시작해 규슈대 대학원에서 ‘고려 사경(寫經) 연구’로 석 박사 학위를 잇따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사경 연구에 그치지 않고 80년대 중반부터는 고구려 벽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

“중국 미술에 대한 열등의식을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본원적인 미의식을 생각했고, 고구려 벽화에 눈을 돌리게 됐습니다. 우리 민족의 영혼의 불꽃이라고 할까요. 또한 고려 불화의 찬연함 화려함도 고구려 벽화의 색감에 뿌리를 대고 있습니다.”

그래서 89년부터 중국을 찾았고 그 결과물로 이번 책이 나온 것이다. 그는 고구려 고분벽화를 처음 만났을 때의 희열을 이렇게 적고 있다.

‘무덤에 들어서자 말할 수 없는 신이적(神異的)인 분위기에 휩싸이면서 설명할 수 없는 박진감을 느꼈다. 나는 고구려 사람들이 얼마나 독창적이며 얼마나 예술적 상상력을 가진 사람들인가 확인하고 내가 그 후손이라는 것이 너무 기뻤다. 지금 우리는 고구려 미술을 알아야 한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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