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미술시장의 '만원경매'

  • 입력 2002년 1월 8일 18시 07분


24만원에 낙찰된 이환권의 '애희와 오진'
24만원에 낙찰된 이환권의 '애희와 오진'
지난해 12월 31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갤러리 루프. 오후 7시가 되자 젊은 미술 작가들과 미술 애호가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작가 35명을 포함해 모두 120여명. 언뜻 보면 미술인들의 망년회같았지만 잠시 후 경매가 시작됐다.

경매가 시작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경매 가격이 1만원부터 출발한 것이었다. 이는 한국 미술품 경매사에 있어 초유의 일이다. 액자값이 통상 5만원이니 액자값에도 못미치는 놀랄만큼 싼 가격이었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일은 파는 작가나 사는 콜렉터 모두 즐거운 표정이었다는 사실이다. 이 경매를 공동기획한 갤러리루프 서진석 대표(34)의 말.

“상업적 논리를 벗어나 즐겁고 부담없는 미술품 경매를 기획하고 싶었습니다.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큰 돈 없이도 미술품을 구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그것을 통해 미술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드리려 했던 거죠. 그래서 경매가를 저렴하게 책정한 겁니다.”

이날 경매에 참가한 작가는 정연두 이용백 홍순명 고승욱(이상 설치) 정수진 고낙범 박미나(회화) 등 35명. 이들의 출품작 40여점이 모두 팔렸다. 최저 1만원에서 최고 30만원까지. 평균가는 10만원이었다. 박용식의 미니어처 ‘로케트 주먹’과 윤규경의 사진 ‘캔들 라이트’가 1만원에, 박이소의 석고조형물 ‘헬리콥터’가 30만원에 팔렸다.

갤러리루프와 인터넷 미술사이트 네오룩닷컴, 미술기획단체 쌈지 등이 공동 기획한 이날 경매의 총 수익금은 약 420만원 정도. 경매로 치면 보잘 것 없는 돈이지만 출품 작가와 기획자들은 이 돈을 소중하게 나누어 쓸 예정이다.

서 대표는 “돈을 벌려고만 생각하는 한국 미술시장에 하나의 멋진 대안을 보여주었다”면서 “그것은 한국 미술의 희망이었다”고 즐겁게 말했다. 미술은 일부 ‘있는’자들의 금전적 투자가 아니라 ‘없어도’ 미술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의 것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서 대표 등 공동기획자들은 앞으로도 이러한 경매행사를 1년에 두세번 이상 정기적으로 마련할 계획이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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