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계절에 듣는 음악]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3번

  • 입력 2001년 12월 11일 18시 24분


“당신 나라는 서늘하군요.”

1997년 처음 내한한 미국 소프라노 바바라 보니는 기자 앞에서 푸른 눈을 반짝이며 그렇게 말했다. 무척 마음에 든다는 투였다.

북유럽 가곡을 좋아하고 ‘금발+푸른 눈’인데다 북유럽이 주활동 무대여서 종종 스칸디나비아인으로 오해받기도 하는 보니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때는 3월이었다.

“우리 나라요? 겨울에는 핀란드지만 여름에는 싱가포르가 된답니다.”라고 나는 대답해주었다. 그리고 ‘꿈’이라는 제목을 가진 북구 작곡가들의 가곡 몇 곡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던 것 같다. 시벨리우스와 그리그의, 선명하면서 서늘하고 짙은 빛깔의 선율들을.

핀란드 얘기를 했으나 며칠 전 갑자기 ‘몽골리아 고기압’이 들이닥치면서 하늘이 말끔히 개이자 서울은 갑자기 북구의 한 도시가 된 것처럼 보였다. 야트막한 언덕을 넘어가면 전나무와 가문비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숲과 푸른 호수가 펼쳐지지 않을까….

이런 날 머릿속에 떠올리곤 하는 작곡가가 핀란드의 국가적 영웅으로 추앙받는 얀 시벨리우스다. 그의 교향곡 3번 2악장을 플레이어에 올려놓는다.

나지막한 현의 반주 위에 플룻의 속삭이는 듯한 연주가 들려온다.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시 ‘안개나라’처럼 나지막한 음성으로, 속삭여 부르는 듯한 은근한 목소리로 작곡가는 자연과 숲의 신비한 분위기를 예찬한다. ‘가사를 붙여 포크 송으로 부르면 좋을 텐데’라는 것은 일본의 레코드 평론가 몬로이 사카이의 말.

숲의 어두움이 지평선 사이로 미끄러져 날아가면 환한 아침이 열릴 것이다. 밤 새 내린 눈은 멎고, 빨려 들어갈 듯 깊은 푸른빛의 하늘 아래 환한 햇살이 내리비춘다. 북구의 찬 공기가 햇살마저 맹맹하게 만든다.

숲을 나와, 설원을 질주한다. 썰매건 스키건 기차건 그 무엇이든 좋다. 멀리 서있는 키 큰 나무들이 가지 부러지는 소리를 낸다. 교향곡 2번 3악장 ‘비바치시모’(매우 빠르게). 차창을 열었기 때문일까,아니면 썰매가 눈더미를 받았기 때문일까. 순간 눈보라를 뒤집어쓰고 만다.

다시 한 굽이를 돌면 보다 장엄한 광경이 나타난다. 2번 교향곡의 장엄한 마지막 4악장. 교향시 ‘핀란디아’와 더불어 시벨리우스가 고국의 자연과 사람들에게 바치는 찬가라고 알려져 있다. ‘핀란디아’가 그렇듯,이 악장은 청중의 마음을 격동시키는 웅혼한 힘을 갖고 있다. 어깨동무를 하듯, 북받치는 감격으로 입을 모아 합창하듯 현의 우렁찬 합주 위에 트럼펫이 쨍쨍한 빛을 던진다. 저음부는 몰아치는 듯한 힘으로 이리저리 뒤섞이며 혼을 불어넣는다.

어떤 연주를 선택할까. 녹음이 다소 오래됐지만, 존 바르비롤리가 지휘하는 할레 교향악단 연주(EMI)를 최상급으로 꼽을 만하다. 밝고 힘차고 뜨겁고 알싸한 시벨리우스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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